[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0)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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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0)

건채 해 놓았던 나물도 바닥이 났고 쓴냉이 쑥뿌리를 캐다 넣어 먹던 풀대죽도 성남의 노력이 아니면 언감생심인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성남이 아니면 뱃속에서 쪼록쪼록 소리가 나도록 굶다가 픽픽 쓰러지는 이웃들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을 남편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체면만 가득한 집안에 쥐볼가심할 것도 없이 바람만 빵빵한 뒤주 안을 정말 염두에서 지웠을까. 순간, 어머니의 살모사처럼 변한 눈초리가 아버지를 향해 꽂혔다.

“참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이녘이 그칸 거는 맞지요. 그렇지만 체면이 우리한테 밥을 줍디껴 돈을 줍디껴. 집에 챗독이 그득함사 낸들 미친 개괴기를 삶아 묵은 것도 아니고, 미쳤다꼬 얼싸 좋다 외간 남정네들 판인 거기 끼이겠소. 정경부인도 못되면서 두 손 재배하고 있으모 쌀이 나오요? 돈이 나오요?”

“또 그놈의 돈!돈! 집에서 길쌈하고 농사 돌보고-”

“아이고오 이양반아 떼양반아. 쎄빠지게 나대봐야 제 동도 못 대는 살림살이 누구보다 잘 앎서로 우짠다꼬 그리 억불로 사람 오장을 또 뒤집어 놓소”

“에이 집구석이라카능기-!”

말이 막힌 아버지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지 마루를 건너가다 돌아서더니 손가락으로 어머니를 겨냥한 뒤 다시 엄포를 놓았다.

“야튼, 또 한 번 그런데 나가모 집구석에서 다시는 내 얼굴 몬 볼줄 알아라!”

아버지가 나가고 잠시 후 뒤뜰 어디선가 아버지의 시위성 헛고함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거니챈 어머니와 성남언니가 잽싸게 뛰어나갔을 때 낫을 든 아버지는 이미 대나무밭 기슭에 있는 방공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버지가 든 낫날이 히끗거릴 때마다 쌓아놓은 밀가루 부대가 좍, 좍, 갈라지며 안에 차 있던 밀가루가 하얗게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이라지 마소, 이리 볼촉시리 나오모 신양에 안좋심더. 참말로, 에나 이라모, 진짜 죄받소”

휘둘리는 흉기에 대한 겁도 없이 어머니가 달려들자 동작을 멈춘 아버지는 대밭 어우름에다 낫을 휙 집어던지고는 가래침 한 덩이를 긁어 뱉었다.

“그 따구 소갈머리로 사나아 기를 쥑일라꼬, 어데서 감히!”

아버지가 무슨 억측을 퍼부으며 비난을 하든 말든 어머니는 흩어진 밀가루를 쓸어 담는 데만 정신을 쏟았다. 간간이 마른 밀가루를 흡입한 사래기침을 쏟아내며 연신 성남언니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에이구우, 땀 흘린 새끼한테 미안하단 말은 못할망정 이 일로 우째야 될꼬”

“아부지 성질 모리는 것도 아니고, 괘안타 옴마. 글타꼬 내가 가만히 있겄나. 내일은 동동골 사방공사하는 데 가기로 벌써 약속 다해놓고 왔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찢어진 밀가루 부대를 안고 끙끙거리는 어머니를 본 언니는 선머슴처럼 대범하게 히히 웃으며 남은 밥을 비벼서 아귀아귀 퍼먹고 맛보면서 동생들께로 숟가락을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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