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2)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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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2)

다른 데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명자언니의 집이었는데 웬일인지 부엌에는 제삿날처럼 밝게 호롱불이 밝혀져 있고 가마솥 아궁이에는 잉걸불이 활활 센 불땀을 내고 있었다. 부엌 천장까지 가득 차 있는 구수하고 푸진 김이 야기로 더욱 까슬해진 양지의 얼굴을 비단처럼 보드랍게 감싸주었다. 그들을 보자 아궁잇불을 돌보고 있던 명자아버지가 손짓으로 어서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김이 펄펄 나는 가마솥을 일별하며 방으로 들어가니 방안에는 벌써 김이 술술 오르는 자배기를 에둘러 앉아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그 집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내주는 틈으로 양지와 언니도 끼여 앉았다. 뚝배기 가득 기름이 동동 뜨는 곰국을 명자아버지가 건네주었다.

“우리 아부지가 이것 멕일라꼬 부르라 카더라”

명자는 흐물흐물하게 잘 익은 고깃점을 소금에 쿡 찍어먹으며 어서 먹으라고 성남의 팔을 밀었다. 영문 모르고 먹게 되는 음식을 바라보며 멈칫거리는 양지의 숟가락을 국그릇으로 꾹 눌러 담그며 명자아버지도 웃어보였다.

“참 맛있다. 너거 옴마 굿하러 가서 받아왔는 갑제?”

“아이다. 아부지가 어데서 갖고 왔는데, 고마 얼렁얼렁 많이 묵기나 해라”

“이기 뭔 괴기고? 이런 괴깃국은 첨 묵어본다. 토끼 괴기 비둘기 괴기는 묵어봤다만, 이렇게 살이 깊고 구수하고, 금방 온 몸이 화악 짙어지는 것 매이로 흐뭇해진다”

“야도 참, 그란깨 울아부지가 너것들 데꼬오라칸거 아이가. 아무 소리 말고 많이 묵기나 해라. 저 봐라 울아부지가 또 퍼온다. 우리는 날마다 묵는데 며칠 묵고 난께 인자 물똥도 안 싼다”

“에나가? 날마다 누가 그리 많이 갖다주는데?”

“그건 나도 모린다. 아부지가 말도 못하는데 설명을 우찌할끼고. 저게 먼데라꼬 손짓만 하는디”

맛있게 먹은 고깃국으로 양지는 이튿날 사태 난 듯이 맹렬한 물똥을 싸댔다.

그런데 며칠 후 양지는 성난 맹수처럼 쳐들어온 아버지로 인해 자신들이 먹은 그 맛있는 고깃국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날도 두 집 아이들은 바른버짐 투성이던 서로의 얼굴이 크림 바른 것처럼 반지르하게 피어난 것을 마주보고 자랑하며 맛있는 곰국을 먹었다. 어린 양지는 그때도 몇 번이나 시중드는 명자아버지에게 넋을 앗겼다.

‘저이가 나의 아버지라면-. 벙어리라도 좋다. 아버지처럼 유식하게 한자로 된 서책을 읽을 줄 몰라도 좋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람이 많지않아도 좋다. 꼿꼿하게 양반걸음을 걷지 못해도 좋다’ 양지는 그때 행복이란, 어떤 보호자의 조건 없는 사랑아래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때 샘물처럼 퍼져 흐르는 저린 감정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저래야 된다. 저 아버지를 안고 매달려 언제까지나 흔감하게 녹아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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