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3)
어린 양지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성격이 매운 아버지는 잘 한 일 아홉 가지는 칭찬도 없이 당연하게 넘기면서 실수 한 일 한 가지는 용케도 꼬집어 내서 딸자식 교육이 어떻네 저떻네로 비약시켜가며 어머니와 자매들의 혼찌검만 냈다.
게다가 아내와 자식들이야 밥을 먹었는지 죽을 먹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다른 사람 못 먹게 다음 때에 또 먹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상을 물렸다.
“아재예, 나는 자꾸 자꾸 눈물이 나예. 에나로, 진짜로, 너무 너무 고맙십니더. 나는 아재하고 같이 살고 싶어예. 아재가 우리 아부지라카모 좋겠어예. 꾸지람도 안하고 날마다 이리 맛있는 괴기도 묵고예”
양지가 달려가서 목을 껴안고 매달리자 명자아버지도 웃으며 양지의 허리를 안고 돌린 입에다 연하게 바른 고깃살을 넣어주며 등을 토닥거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흐뭇한 성찬의 모꼬지를 깻박내는 불한당이 되어 쳐들어 온 것이다.
“이놈의 법짜 쌔키, 어데있노!”
“내 이놈의 새끼 패쥑이삔다. 내 가시나들까지 매구 귀신 맹글라꼬. 어데다 흠충시럽기 진육을 쳐멕이고 있노 으이?!”
아버지가 한창 명자아버지를 짓밟고 있는데 집으로 오던 명자어머니가 달려들어 아버지를 뜯어말렸다.
“상촌 양반, 와 이라요. 짜빡하모 우리 아아들 아부지를 몬 잡아 묵어서 패악이요. 법 없이도 살 우리 명자아부지한티 에나 와 이라요.”
“헛, 초록은 동색이라꼬, 영낙없이 가시버시는 가시버시네. 내가 와 이라는지 몰라서 그라나? 이 짐승겉은 놈이 묏등에 파묻힌 썩은 쇠 영장을 파다가 아아들 믹인걸 알고도 죽은 놈 맹키로 내가 가만있으란 말이가?”
죽어서 파묻은 소를 파내다 끓여준 곰국이 그렇게 맛있었다니. 아버지가 명자언니 부모를 죄지은 짐승 족치듯 하는 것보다 더 놀라웠다. 어린 양지는 이제 물똥을 누지않아도 될만큼 속이 여물어진대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삶을 때는 모두 다 죽은 짐승이지 솥에 들어가서도 살아있는 고기가 어디 있노. 산에 나무하러 갔던 이웃 아저씨도 ‘홀랑개’로 잡은 죽은 토끼를 덜렁덜렁 들고 와서 굽고 찌지고 맛있게 잘만 먹더라‘
양지의 생각으로는 죽어서 파묻은 고기라서 사람이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별스러운 시빗거리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배고픈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무덤 속에 든 죽은 소를 메고 온 명자아버지의 간절한 자식 사랑에 대한 감동이 거룩하고 존경스럽게 뭉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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