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신록으로 물들이는 삶
[월요단상] 신록으로 물들이는 삶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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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수필가)
계절의 순환이 멈춘 적이 없듯, 봄이라는 계절은 결코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지 않는다. 엊그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분홍빛이었건만, 산 위엔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다음 푸름으로 물들이고, 계곡을 돌아쳐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는 고요한 산 빛을 흔들어 깨운다. 푸름을 마음껏 표현하는 싱그러운 계절. 우리들의 가슴 어딘가에 고개 들던 마음의 짐까지도 더할 수 없이 푸른빛을 띠우고는 밝은 미소로 다가오고, 또 다가가는 듯, 신록으로 승화된 자연의 위대함을 어찌 느끼지 않으랴.

하던 일 멈추고 산으로 눈길을 던질 때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저렇게 빨리 푸름으로 물들었을까? 저 멀리 아지랑이 떠난 그 자리엔 우리 영혼도 햇빛과 바람과 친구 되어 신록으로 물들이는 데 한몫을 했으리라.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푸름을 보며 마치 지난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승화된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듯, 사랑도 푸른빛 은은한 빛깔로 슬기롭게 불붙이려고 했던 모습 또한 가슴에 잊히진 것은 않으리라.

사랑보다 더 아름답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사랑이 되도록 한 그루의 어린 나무를 성장시켜낸 기쁨. 바로 그것이 우리들 나이쯤에, 지금 신록의 계절에 느끼는 감회라 생각하자. 더욱 욕심 부려 푸름으로 우거지는 자연을 보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슬픔도 기쁨 되게 순수함을 되찾아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길 바라자. 그래서 산뜻한 신록처럼 푸르고 어지럽지도 요란하지도 않는 눈길로 인생은 복되고 순조롭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삶에서 무엇인가 이룩하는 성취를 진심으로 기원하자.

누구나 철모르는 어린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수승대 요수정 앞에 흐르는 맑고도 깊은 강물이 되어 흐를 때도 있었고. 지금은 깊이조차 알 길 없는 측수대의 깊은 강물이 되어, 숨죽인 듯 묵묵히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던가. 거침없이 흐르는 위천천을 따라 가다보면 때로는 강기슭에 돌을 던지는 몸부림이 없을 순 없고, 어느 곳에서는 조그마한 폭포수가 될 때도 있다. 그 폭포수에 피어나는 무지개꿈도 있겠지만, 물거품처럼 피어났다 사라지는 환상의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 아픈 인식도 있으리라.

강물은 흘러 위천천에서 거창 건계정으로 또 인생의 바다로 흘러 파도가 될지라도, 우리에겐 푸름으로 물든 자연과 교감하는 감각이 보다 인간적인 자세가 아닐까? 삶과 죽음은 하나이듯 인생에는 패배와 고통도 있고, 이들 고통이 베푸는 진실과 처절함이 깨우치는 지혜도 있다. 초목들보다 인간이 과연 지혜로운가.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난 세월이 되듯, 늦었다 싶을 때 우리의 삶도 신록으로 물들이는 삶이길 바라자.
 
이석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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