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5 (252)
“이름 만 아부지모 뭐하노. 자식을 돼지새끼 모냥으로 밥만 믹이믄 되는 줄 알고. 세상 밖에 나가 본께 부모가 공부 많이 시키고 정 많이 줘서 키운 여자들 많더만 아부지는 와 그런 세상은 안보고 캐캐묵은 구닥다리 생각이나 나부다시면서 나를 잡소. 나는 아부지 겉은 인간이 싫다. 머스마 그기 뭐 그리 대단하다꼬. 딸도 잘만 키아 놓으모 열 아들 못잖다는 글도 안보고 뭐했어요”
이제는 정말 그 어떤 비방도 믿지 않으리라. 머리끝까지 약이 오른 아버지도 악마처럼 험상궂은 얼굴로 언니를 쫓아 뛰었다.
“네 이년 잡히기만 해라, 팍 쎄리 쥑이삐고 말끼다. 니 년이 애비 심정을 다 안단 말이가. 네 이년 거 안 섰고 뭐 하노. 그냥 서라. 동네 사람들 다 보고 있다. 그냥 서라. 야, 이년아. 니하고 내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가 맺히 갖고 이런 망신을 시키고 있노.”
아버지 역시 이제 동네 사람들을 의식하지도 않고 악에 받친 소리를 질러가며 들판을 가로질러 산등성이를 넘어서 언니를 잡으러 두 팔을 휘저으며 나아갔다. 걸음이 빠른 언니는 뒤따라오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곱게 도망만 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낳기만 하모 자슥이가, 내가 돼지가? 소가?, 집구석에 갇히서 밥이나 묵고 똥이나 싸라 그 말이가. 비겁하게 시치미 떼지 말고, 능력이 없어서 몬해주모 몬해 준다꼬 솔직히 말해라. 양반집 자슥답게 순종하라꼬? 나는 그런 양반 싫다.”
산등성이 숲속으로 그들 희한한 부녀의 쫓고 쫓기는 행동이 사라진 한참 후. 후줄근한 행색으로 터덜터덜 돌아온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자 그만 말도 없이 마당 가운데서 허물어져 버렸다. 모든 게 끝났다는 암시였다.
끝까지 따라오는 아버지를 뒷걸음쳐 도망가며 욕하다가 제풀에 실족한 언니는, 이틀 후 동네 사람들에 의해, 머리의 피를 많이 흘린 시체가 되어 국사봉 벼랑 밑에서 수습되었다.
“내가 이리 길로 안 틔우모 내 동생들도 몬 산다.”
점점 더 맹렬하게 저항의 심지를 돋우며 언니가 그랬었다고 명자언니도 전했다.
단지 여자라는 이름으로 죄 없이 태어난 어린 계집아이들이 그들의 조부나 아버지, 오빠, 심지어는 동생이나 조모, 어머니에게까지 하시 당하면서 구차한 삶을 이어가야하는 그 불공평한 현실 타파에 대한 언니의 열정은 더 맹렬했다
살아내야 하는 무시무시한 책무의 멍에를 쓰고 제 목숨을 스스로 어떻게 할 권리마저 유린당한 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매여 고통 받아가면서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하는 여인들. 그 절망적인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서 언니는 아버지와 맞서 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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