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대표 명품 브랜드 구찌
오늘날 세계 명품 시장은 프랑스의 루이 뷔똥 그룹과 스위스의 리치몬드 그룹, 그리고 이탈리아의 대표적 브랜드 구찌를 소유한 프랑스의 케링 그룹(2013년 이전에는 PPR 그룹)이 삼분하고 있다. 케링 그룹에 속하기 전의 구찌 그룹이 소유한 브랜드는 이브 생 로랑, 세르지오 로시, 구쉐론, 보테카 베네타, 푸마, 발렌시아가, 스텔라 메카트니, 알렉산더 맥퀸, 구찌 등으로 여성과 남성 의류, 핸드백, 지갑, 생활용품, 신발, 보석, 시계, 선글라스, 향수와 화장품, 아동 의류를 만드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였다.
구찌는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1921년 피렌체에서 구둣방으로 출발한 것이 그 시초다. 창업자인 구찌오 구찌는 1881년 피렌체에서 밀짚모자를 만들던 영세한 모자 가게를 운영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구찌는 런던에서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증기기선의 기관장 조수가 되어 런던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구찌는 막노동을 하다가 최고급 호텔인 사보이 호텔에 취직하게 된다. 이후 구찌는 말단 직원에서 지배인의 위치에까지 올라 성공한 편이었으나 39세 때 돌연 사표를 내고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와 가업을 잇게 된다.
구찌는 일찌감치 세계 최초로 품질 보증을 위해 디자이너의 이름을 상품 속에 새겼을 정도로 철저한 신용을 지킨 장인이었다. 구찌는 1930년대 들어서는 귀족들의 승마 용품과 가죽 용품, 그리고 작은 가방을 취급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1940년대에 들어서는 뭇솔리니의 독재 치하에서 자재의 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구찌는 여러 시도를 하다가 구찌를 상징하는 여러 제품 중 최초의 제품이 된 ‘대나무 백’을 만들게 된다. 대나무 백은 당시 귀족과 유명인사의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애장품으로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구찌는 1970년대까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그러자 액세서리 사업부에서는 장신구, 향수사업을 시작하면서 화장품용 백, 라이터, 필기도구 등도 만들어 팔았다. 그런데 이 액세서리 사업부는 구찌 본연의 이미지와 사업의 정체성의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977년에는 1960년대 오픈한 비버리 힐스 매장을 구찌 미술관으로 전환하게 된다. 1981년에는 피렌체에서 창사 이래 최초로 런웨이 패션쇼를 개최하였고, 1982년에 주식회사로 상장한 데 이어 회사 지분의 50%를 보유한 로돌포의 아들 마우리찌오 구찌가 경영권을 넘겨받게 된다. 그러나 구찌가의 형제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면서 구찌 라이센스를 남발하여 각기 상품들을 무분별하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판매함으로써 브랜드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기 시작한다.
1983년부터는 창업자 아들들과 손자들이 사업권을 놓고 분쟁을 하는 가운데 저가의 구찌 플러스와 같은 제품들을 판매하면서 구찌는 하향세에 접어든다. 1987년 바레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인베스트코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 결국 구찌의 전체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인베스트코는 1999년에 프랑스의 PPR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하게 된다./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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