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낙엽 한 장에 스며있는 아름다움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월요단상] 낙엽 한 장에 스며있는 아름다움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 김귀현
  • 승인 2016.10.30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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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라면 서로가 소리와 몸짓과 자기만의 방식이나 수단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연초록으로 움터 푸른빛으로 변한 나뭇잎도 그 삶의 굽이마다 짙푸른 녹음의 빛깔로써, 바람에 저마다의 몸짓으로써 표현하며 변화된 삶을 살지 않을까 한다. 이 가을 온몸에 불 질러 놓은 듯 단풍으로 붉게 물든 나뭇잎새를 보노라면 당연히 계절의 변화일 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까.

모름지기 계절의 변화에 따라 붉게 물들어갈 수밖에 없는 단풍잎이라 생각지는 말자. 벌레 먹고 찢어진 한 장의 낙엽도 하나의 가냘픈 생명일진대, 제 나름의 삶으로 거쳐야 했던 수많은 고통과 상처가 어찌 없으랴. 여름하늘 으름장을 놓고 가는 뇌성과 번개의 무서움에 떨어야만 했고, 먹장구름에 내리 때리는 장대비의 아픈 상처도 자국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이라고 볼 수 있는 건 산새와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무릇 상처 입은 나뭇잎새 일지라도, 삶의 과정에 따라 물이 들어가는 단풍의 색깔도, 잎새의 생김새도 서로 다르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한 삶의 과정일지라도 그가 처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생애를 밟아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곳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그 차이, 그 삶을 어찌 꼭 같다고만 볼 수 있으리까. 따지고 보면 운명이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자연도, 상처 입은 나뭇잎도 각자의 삶으로 이 땅에서 반드시 거처야 할 하나의 소중한 생명임에는 틀림없다.

나뭇잎은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름답게 물들기만을 바라며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탐욕스러운 마음도 묶어두고 무욕으로, 무욕의 모습으로 오직 고운 색깔로 비춰주길 바라는 그 진실만으로도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아니라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영혼이 영혼을 소유할 수 없듯이, 사랑도 사랑을 소유할 수 없을 듯. 그저 단풍과 같이 혼자서 물이 들고 때가 되면 떨어져 결국 무욕의 낙엽으로, 자기만의 사랑으로 물들이는 붉은 낙엽 한 장과 같을 수 있는 삶이길 바라자.

곱게 물든 단풍은 마침내 빛바래어져 낙엽으로 뒹굴어 찢기고 부서져서 제 나무의 밑거름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단풍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도록 하자. 모든 사랑이 아름답고 화려하고 숭고하진 않더라도, 오직 모든 걸 내어주고 아름답게 승화되는 낙엽 같은 사랑을 이 가을날 그리워하지 않을 자 어디 있으랴. 우리도 붉은 낙엽 한 장에 스며있는 아름다움으로, 무욕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삶을 꿈꾸어 보자.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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