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6)
  • 경남일보
  • 승인 2017.01.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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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36)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뱉으며 양지를 바라보는 추여사의 눈빛에 파란색 안광이 두드러졌다. 그쪽과의 감정이 얼마나 조율 어려운 상태로 어긋나 있는지 높낮이 심한 추 여사의 어조가 짐작케 한다. 차라리 그 부분은 모른 척하고 넘어갈 걸 싶었으나 떨리는 강한 톤으로 추 여사는 다시 속내를 털어 내기 시작했다.

“짐승도 저 알아주는 사람에게 정을 준다는데, 나는 짐승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어. 이제나마 내가 사람답게 살고 못살고는 양지가 나를 어떻게 받아주느냐에 달렸어. 나 말이야, 정말 할 수 있는 한은 내 심령을 다 바쳐서 살았다는데 양심 가책은 없어. 병훈이랑 최실장이랑 결혼해서 손자들이 나면 내 손으로 알콩달콩 예쁘게 키우면서 비록 내 개인의 인생은 애시당초 빗나가 있었지만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사람들께 보여주며 살고 싶었던 거야. 나는 이제 오직 양지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심정으로 왔으니까 구차한 내 목숨이 죽고 사는 건 양지 마음에 달렸어.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마저 안계시니 어머니처럼 날 생각하고 받아주면 좋겠어. 마음으로 의지하지 절대로 폐는 끼치지 않을 거야.”

남인 추여사가 자신에게 기울이는 도를 넘치는 관심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그저 인정이 특별히 많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하는 대로 받아넘겼었다. 그런데 지금 추여사의 말 속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곡절한 갈증이 있었다.

그러나 추여사가 풍기는 연민스러운 분위기에 짓눌려서 마음이 흔쾌하지 않은 부담스러운 관계를 다시 맺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여기까지 ‘너를 의지 삼아’ 찾아왔다는 사람을 그냥 내칠 수는 없었다. 진심은 아니더라도 냉정함만은 내비치지 않고 잘 달래서 관계정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차차 이유를 말하겠다며 먼저 잠자리에 드는 사람을 어쩔 수 없어 양지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불을 껐다.



이튿날, 추여사는 양지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피곤 하실 텐데 뭘하러 일찍 일어나셨어요. 늦게 일어나서 해먹어도 되는데.”

벌써 대령해있는 밥상을 받으려니 미안해진 양지는 약간의 냉담함이 섞인 음성으로 차분하게 말했으나 추여사는 조금도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없다.

“무슨 보약 무슨 보약 하지만 밥보가 젤이라고 옛날부터 그랬잖아. 때 맞춰서 식사는 해야 건강 유지가 되지. 강 사장이 이 나이까지 그리 건강하게 별짓 다 하는 것도 다 누구 덕인지 알아? 사람이 사람의 진정을 몰라주고 잘되는 법 없어. 그러니까 그 모양이지.”

뿌리 깊은 함원의 표현으로 다시 강 사장의 이름이 올랐다. 양지가 꼭 들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강 사장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양지를 빤히 바라보던 추 여사의 눈빛이 금방 샐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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