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달집태우기’가 없는 정월대보름을 보내면서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여성칼럼] ‘달집태우기’가 없는 정월대보름을 보내면서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2.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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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이 지난 후 보름달이 처음 뜨는 날을 우리는 ‘정월대보름’이라고 부르고 여러 가지 풍속과 음식을 즐기며 그날을 보낸다. 오곡밥과 묵은 나물, 더위 팔기, 부럼 깨기, 귀밝이 술 등과 같이 지속적으로 행해진 것도 있지만 사회변화에 따라 사라졌다가 최근에 전통을 살리는 차원에서 다시 시행되는 것들도 있다. 그 중 하나의 행사가 ‘달집태우기’일 것이다. ‘달집태우기’는 지신밟기와 함께 전통을 살리는 의미와 이웃과의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 몇 안 되는 행사 중의 하나이다.

각 동네마다 강변이나 산기슭 등의 넓은 공터에 나무를 모아 세워서 쌓아두고 달이 떠오르면 그것에 불을 놓아 태우면서 달님에게 한 해의 액을 막아줄 것과 한 해 농사가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하는 것이 ‘달집태우기’이다. 그 곁에서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간소한 음식을 나누면서 새해 덕담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올해 진주에서는 AI(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파동으로 각 동네의 ‘달집태우기’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아쉽긴 한 일이나 가축 전염병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정적 조치라고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달집태우기 행사가 취소된 것을 아쉬워하는 이웃들을 보며 하필이면 올해 이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연일 계속 보도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나날이 어려워지는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뒤숭숭한 마음을 잠시나마 의탁하고 달래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던 ‘달집태우기’ 행사가 취소된 것에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집태우기’가 매년 행하는 세시풍속의 하나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오히려 반성할 줄 모르는 국정농단 세력의 억지로 인해 더 꼬여만 가는 해결과정 때문에 여전히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 그러한 행사를 통해서라도 마음을 위안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행사가 취소된 이유가 가축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 또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건에 이어 AI와 구제역까지도 정부가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키우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절망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시간이 가니 새해가 밝고, 시간이 가니 새해 첫 보름달이 떠오른 것처럼 지금의 상황도 이 시간을 견디면 순리대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함께 모여서 달맞이를 하며 기원을 하고, 서로 함께함을 확인하는 시간은 갖지 못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절실하게 빌었던 기원은 달님에게 가 닿았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달집태우기’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절실해진 마음으로 좀 더 상식과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 좀 더 평안한 한 해를 기원해 본다.

 
강문순(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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