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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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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9  01: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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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0)

쪽방 어딘가의 문을 드르륵 열더니 여자의 지청구가 쏟아져 나왔다.

“참 누님도 설거지 해놓고 방금 들어갔거만, 나만 보면 장천 잠꾸러기타령이네.”

투덜거리는 볼멘소리에 이어 수박을 훔쳐 넣은 것처럼 불룩한 배를 안고 나이가 짐작 안 되는 젊은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돈 받을 손님 아니니까 뚝딱 해라.”

기름기 밴 식탁에다 손가락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양지의 앞에 자장면 그릇이 놓였다. 배고픔을 얼마나 참았던지 면발은 빨려들듯이 입안으로 쏙쏙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끌려들어갔다. 그릇에 묻은 자장까지 닥닥 긁어먹고 나니 움츠렸던 어깨도 좀 펴졌다. 어디서 난지도 모를 용기가 난 것도 그 때였다. 양지는 그릇을 챙겨드는 아주머니를 보고 말했다.

“아주머니, 저 여기서 일도 배우고 잠도 좀 재워주면 안돼 예?”

“너, 그게 무슨 말이냐, 집 나온 애였어?”

어떤 말로 둘러대야 할지 양지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주인여자가 다시 나무라는 말을 던졌다.

“너 그렇게 안 봤더니 아주 못된 애구나.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부모 생각은 않고. 어서 가라. 난 너 같은 애들 안 붙여둔다.”

그 소리에 울컥해진 양지는 와락 아주머니에게 매달렸다.

“아주머니 저 사실은 집 나온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없어요.”

“갈 데가 없다니. 부모도 없어?”

양지는 울먹이면서 그냥 긍정으로 보일 고갯짓만 끄덕거렸다. 그것을 본 주인여자는 들었던 그릇을 도로 내려놓으며 양지 앞에 마주 앉았다.

“저런, 그래서 어쩌냐. 에이 참.”

쓴 입맛을 ㅤㅉㅡㅂㅤㅉㅡㅂ 다시며 주방으로 물러갔던 아주머니가 주방 일을 하던 청년과 뭐라고 대화를 주고받더니 도로 나와 양지에게 일렀다.

“어린 게 의지가지없다니 그냥 보낼 수도 없고……. 딱해서 그러니 있어봐라. 대신 네가 말한 대로 월급은 없다.”

예에 예예. 양지가 고마워하고 있을 때 주방에 있던 청년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오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럼 잠은 여기서 나랑 자라고?”

주인여자가 눈을 흘기며 젊은 남자의 등판을 철썩 내질렀다.

“그래 같이 자라 자. 그게 말이냐 되냐? 넌 안집에서 동아랑 같이 자고.”

당연히 그래야 될 걸 농담 한 번 한 걸로 여기는지 청년은 휘파람을 불며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측은지심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주인여자가 다시 양지에게 일렀다.

“나도 사람 쓸 형편은 못되지만 네 마음씨가 고마워서 그래. 언제까지 같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눈썰미 있게 부지런히 잘해봐라. 어디 가서 이런 일 해봤다고 하면 밥 굶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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