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단종 태실지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객원칼럼] 단종 태실지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10.09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대왕 태실지에서 완사천을 따라 내려가면 옥동마을(곤명면 은사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병 모가지 같은 골짜기를 지나자 연꽃잎 닮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들판이다. 들과 마을의 길목에 단종 태실지 안내판의 화살표에 시선을 맞추니 계란 모양의 동산이 보인다. 저곳에 태를 묻었나보다.

단종의 삶은 애사이다. 세종 23년(1441)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난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사흘 만에 죽었다. 이를 지켜보았던 세종은 원손을 지켜주고자 태를 자기 태실 근처에 묻게 한다. 12세에 왕위에 올랐고 14세 들어 비를 맞았으며 정순왕후이고 자식이 없다. 15세에 수양대군에게 선위, 17세에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귀양지에서 사사(賜死) 당한다. 200년 지나 숙종 대에 왕위를 회복하고 장릉으로 격상되었다. 왕비는 사릉에 묻혔는데 그곳의 소나무를 장릉에 옮겨 심어 부부의 연을 맺어주었다. 이를 정령송이라 한다.

농로를 따라가다 도랑을 건너자 두꺼비 바위 옆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늘비하다. 위로 곧장 올라 해를 가리는가 하면 지팡이에 의지하는 노파 허리처럼 꼬부랑 몸통을 볼 수 있다. 서로 가지를 걸쳤으며 무심한 세월을 한탄하는 듯 말라가고 있다. 소나무 숲에서 “뻐꾹 뻐꾹”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뻐꾸기는 알을 품고 있던 딱새가 놀라 둥지를 비우는 사이에 딱새의 둥지를 차지하고 알을 낳고 줄행랑을 치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왼쪽으로 석주가 있다. 위로는 주름 잡힌 송이 머리에 대추가 얹혀있는 형상이며 몸통은 짧고 받침대는 아래로 쳐진 연잎으로 장식되었다 오른쪽으로 문양을 새긴 직육면체 돌을 받치고 있는 거북은 영락없는 아기 거북이다. 작은 발을 몸에 붙이고 겁에 질려 주변을 살피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냄새를 맡으려고 콧구멍을 활짝 열고 있다. 세종대왕 태실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의 안정된 자태와 비교된다.

석주 아래 다듬은 돌 조각이 흩어져 있고 잘리고 떨어져 나간 절규하는 비석이 두 마디를 남겼다. 앞면에 大王으로 읽을 수 있고 뒷면은 百七年甲寅의 희미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를 세종대왕 태실비문과 조선왕조실록 영조 10년 7월 11일자를 근거로 정리하면, 端宗大王胎室(단종대왕태실), 崇禎紀元後一百七年甲寅○月○○日建(숭정기원후일백칠년갑인○월○○일건)이다.

일제는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으려 전국에 흩어진 태를 양주로 옮기고 태실지를 민간인에게 불하하였다. 세종대왕의 태실비는 어렵게 찾아 도로 주변으로 옮겨 세웠다. 단종 태실비는 일부만 볼 수 있고 나머지와 다른 석물은 어딘가에 매장되었을 것이다.

부러지고 깨어진 단종 태실비는 최근에 덧붙이는 신단종애사이다. 정령송을 가져와 심고 태실비 복원 또는 세종대왕 태실비 근방에 새롭게 단장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