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 11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 11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8.02.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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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2월에 총 결산을 하는 시간구조를 갖고 있다. 올 2월도 매일, 매일이 한 학년을 정리하고 그 결실을 수렴하는 시간들이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 여행’이 11번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제 자리로 천천히 되돌아왔다. 지난해 3월, 수정초등학교 3학년 4반 27명의 친구들과 함께 떠난 시조여행은 한 해를 훌쩍 넘기고 2월 10일 토요일 오후 2시 11번째 맞이하는 시조집출판 기념식으로 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괴짜 선생님과 개구쟁이들’이란 이름을 선물 받은 멋진 시조집 한 권과 66장의 상장이 고단한 여행길의 선물로 남았다.

“선생님! 시조는 왜 써야 해요?”

“학원 가는데, 방해가 되는 시조는 꼭 써야하나요?”

“논술학원도 가야하고 영어 학원도 가야하는 시간에 답답하게 시조를 쓰고 있다니 어느 시대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시조를 쓴다는 사실 하나로 여행의 길목에는 다양한 터널들이 줄 지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짧게 후딱 지나가는 잡목 숲과 긴 강을 건너가는 아슬아슬한 교량을 만나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도록 긴 어둠을 끌고 온 터널을 만나 기도했다.

여행은 그런 것들의 모둠이다. 가야할 곳의 이정표도 있고 멋진 지도는 있을지 몰라도 그곳에서 어떤 만남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쉽게 꿈꾸지만 선뜻 달려들지 못하는 로또나 주식투자를 꼭 닮았다.

시조는 한글로 써 가는 여행길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천년을 넘게 넘어온 고갯길이고 앞으로도 굽이굽이 넘어야 가야할 고갯길이다. 하도 오래 쓰다 보니 누렇게 낡아버린 이야기이며 잊혀질까 두려워 가슴 깊숙이 숨겨두는 은밀한 역사이다.

일 년이란 시간을 두고 함께 가는 여행길에서 어린 벗들과 나누는 크고 작은 상이 주는 기쁨과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설렘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음 역으로 그 다음 역으로 기차를 몰고 나아가게 했다. 여행은 늘 고향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출발한다. 시조는 우리네 글쓰기와 생각 만들기의 고향이고, 가장 쉽고 가장 짧은 형식의 집이다. 우리 곁을 지키는 푸른 남강처럼 넉넉하게 기다려주며 줄기차게 흐르고 있다. 방금 긴 여행을 함께 마친 어린 벗들에게도 시조와 함께한 여행길이 아름다웠기를 기원하며 새로운 출발을 꿈꾸기 시작한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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