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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71>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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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4  23: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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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빛과 구름이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 양반,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김삿갓의 시 ‘죽 한 그릇’ 전문-

 

   
 

◇동가식서가숙 방랑시인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느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이 내놓은 저녁 끼니는 멀건 죽 한 그릇뿐이었다. 죽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이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농부에게 시의 내용은 별의미가 없었다. 그저 나그네와 농부의 이심전심, 서로에게 위안이고 공감하는 그 마음이 곧 진정한 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김삿갓(본명 김병연)이 6살이던 해, 조부 김익순이 평안북도 선천부사로 있을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김익순은 투항한다. 난이 진압된 뒤 김익순의 가문은 폐족이 된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를 전전하다가 영월에 정착하게 된다. 김삿갓이 20살 때 영월지역에서 친 진사시(과거시험의 하나)에서 장원한 뒤 어머니께 자랑을 하며 초시 시제로 ‘홍경래의 난 때, 순절한 가산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가 나왔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지금껏 숨겨왔던 할아버지의 비밀 이야기를 한다. 조상을 욕되게 했다고 생각한 김삿갓은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그때부터 삿갓을 쓰고 천하를 방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방랑시인으로 동가식서가숙 살아가면서 수많은 풍자시를 남긴 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 정시룡의 집에서 마지막 목숨을 거둔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체험론적 시창작과 힐링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김삿갓이 방랑하게 된 내력과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만나기 위해 전남 화순에 있는 ‘삿갓동산’과 종명지(終命地) 등을 찾아 나섰다.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삿갓동산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방랑벽이 있다. 그것이 낭만을 찾아 떠나는 방랑이냐, 아니면 가슴에 씻지 못할 아픔을 안고 떠돌아야하는 운명이냐에 따라 그 방랑의 빛과 그림자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오직 시 한 수로 동가식서가숙 해야만 했던 김삿갓의 운명, 하지만 그는 그 운명을 슬픔으로만 안고 살아간 것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그 분노를 특유의 시적 풍자와 조롱을 통해 오히려 즐기려고 했다. 김삿갓의 방랑과 낭만을 만나기 위해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에 있는 김삿갓 유적지부터 찾았다. 마을 입구에 ‘삿갓동산’을 조성해 놓았다. 김삿갓 동상과 50여기의 시비, 서정적인 분위기의 산책로와 원두막으로 꾸며놓은 삿갓동산은 다른 시비동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무엇보다도 시비에 새겨놓은 서체와 바탕그림, 빗돌의 모양이 다양하며, 시와 더불어 그 예술성이 매우 돋보인다는 점이 탐방객들을 몹시 놀라게 했다. 방랑하는 김삿갓의 모습이나 삿갓 형상의 바탕그림 위에다 시를 새겨놓거나, 항해하는 범선과 서책 모양의 빗돌에다 시를 새겨 놓은 시비들이 시선을 끌게 했다. 그리고 시비엔 한문으로 된 원시에다 독음(讀音), 한글로 해설까지 해 놓아서 누구나가 쉽게 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삿갓동산 바로 옆에는 김삿갓이 마지막 생을 마친 종명지(終命地)인 정시룡씨의 집이 있었다. 정시룡씨 사랑채에 머물면서 마을 건너편 망미대와 화순의 적벽 등을 유람하면서 다수의 풍류 시를 남겼다고 하다. 구암마을은 김삿갓 시인이 생전에 세 차례 방문하고 6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숨을 거두자 마을 뒤 길손이나 주인 없는 시신을 묻어두는 똥뫼에다 시신을 거두었던 초장지(初葬地)도 남아있다. 초장한 3년 뒤 김삿갓의 차남인 익균이 강원도 영월로 이장해 갔는데, 지금은 파묘한 자리에 표지석만 남아 있었다.

구암마을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김삿갓이 즐겨 찾은 망미대가 있었다. 자그마한 동산인 와우산 위에 세워놓은 정자인데, 높이에 비해 망미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빼어났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망미대라고 이름을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미대에서 20여분 차를 달려 화순적벽의 대표격인 창랑적벽과 물염적벽에 들렀다. 김삿갓이 화순지역을 자주 찾은 것은 적벽의 비경에 도취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물염적벽을 건너편에 둔 물염정 옆에 조성해 놓은 공원에도 삿갓을 쓴 채 죽장을 짚고 방랑하는 모습의 김삿갓 동상이 있었다. 강 건너 병풍처럼 둘러 친 물염적벽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있는 소나무숲이 김삿갓으로 하여금 이곳을 즐겨 찾게 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과 조부에 대한 불효를 저지른 회한,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울분을 말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 위에 띄워 보내며 흘린 눈물이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방랑시인
발길이 닿는 곳마다 시가 넘쳐났고, 숨결이 닿는 곳마다 사랑이 맺어졌으며, 시 속에는 민중의 아픔을 웃음으로 극복하게 한 재치와 해학이 있고, 어떤 때는 날카로운 풍자로 세상을 희롱하며 깨우쳐 준 시도 많았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떠돌이 생활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조선 왕조의 말기적 모순과 세도 정치로 인해 도탄에 빠진 민생, 대규모 민중 항쟁 등 이 모두가 김삿갓을 방랑시인이면서 민중시인,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낭만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로 자리잡게 했다.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술과 시, 방랑이라는 묘약을 통해 뛰어넘은 김삿갓이 어쩌면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모두 자유로운 영혼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방랑을 꿈꾼다. 짚신과 죽장, 삿갓 대신 자동차로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점이 김삿갓 시대와 다를 뿐이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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