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덫에 발목이 잡혀야 하나
과거의 덫에 발목이 잡혀야 하나
  • 경남일보
  • 승인 2019.05.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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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나는 호적상의 공식적인 출생지가 부산이지만, 실제로 태어난 곳은 밀양이다. 내가 태어날 무렵의 본가는 부산이었고, 내가 태어난 외가는 밀양이었다. 나에게는 여기가 늘 애정과 향수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산자수명한 곳, 영남루가 있는 곳, 인물이 비교적 많이 배출된 곳, 아랑 설화의 애잔함이 깃들여 있는 곳, 밀양아리랑의 왁자지껄한 신명이 넘치는 곳, 고속전철이 지나가는 곳, 한때 송전탑이라는 사회 문제가 야기된 곳…….

그런데 밀양은 최근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밀양시에서 가요박물관을 만들려고 하자, 밀양의 시민 단체가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지방에는 유독 대중가요에 종사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작곡가가 적지 않다. 대중가요계를 풍미한 천재적인 작곡가 박시춘, ‘옛 생각’과 ‘허공’을 지은 정풍송, ‘머나먼 고향’의 박정웅, ‘무정항구’의 유금초가 있다. 작사자로는 월견초(서정권)와 가수로는 남백송과, (은방울자매의 한 사람인) 박애경이 유명하다. 시민 단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박시춘이다. 그가 제1급의 친일파였다는 것. 아시아-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의 침략주의적인 국책의 과제에 수응하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2, 3년간의 짧은 인생은 그랬었지만, 긴 역사의 안목에서 볼 때, 대중문화의 빛나는 공로자이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백성의 심금을 울린 ‘애수의 소야곡’에서부터, 전쟁 중의 이산을 뼈저리게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를 지나, 전후의 폐허 속에서 남녀의 애틋한 사연을 울려준 ‘봄날은 간다’에 이르기까지 숱한 애환이 담긴 민족의 음악적 정조와 선율을 창조해 냈다.

밀양의 시민 단체는 문제의 가요박물관이 사실상 박시춘을 선양하는 친일 박물관이라고 간주한다. 또 독립 운동의 성지인 밀양에 친일 박물관이 웬 말이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밀양이 독립 운동의 성지라니. 전국 방방곡곡에 백년 전의 만세 운동을 스스로 행하지 않은 곳이 어데 있단 말인가? 이 얘기는 밀양이 독립 운동의 각별한 장소성을 지녔다기보다 밀양을 고향으로 둔 김원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자, 그럼 김원봉은 누구인가? 가장 가열한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그가 최근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남자 배우, 즉 조승우, 이병헌, 유지태가 연기함으로써 미화된 면이 적지 않다. 영화 ‘암살’에서 말한 대사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가 주도한 의열단은 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단체였다. 시인 이육사도 의열단원으로서 독립운동을 감행하다가 피체되어 순국했다. 반면에, 그는 북한 인민공화국 수립 과정에서 기여한 인물이었으며, 한국전쟁의 전범으로 기억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시민단체는 사회주의자를 용서할 수 있어도 친일파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발상이 가장 문제적이다.

친일파와 사회주의자를 용서하려면 함께 용서해야 하고, 이 둘을 용서하지 않으려면 같이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 되고 누군 안 되고 해선 곤란하다. 국민을 분열하려는 거라서다. 내 생각으로는 이제 모두 용서해야 한다. 과거의 덫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 무릇 진보는 글자 그대로 미래를 향해 조금씩 진일보해야 한다. 과거의 망령에 더 이상 사로잡혀선 안 된다. 그래, 박시춘과 김원봉이 공존하는 밀양이어야 한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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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2019-05-11 09:28:09
어떤논리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두고 저울질을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