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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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7.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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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동화작가 한수연의 수필집과 작가로서의 중량(4)

 

그 남자는 어머니가 약속한 한 줄짜리 요구르트를 사 먹을 형편이 되지 못하자 우여곡절을 겪고 교도소에 들어가 10년 복역을 했는데 그 사이 복역중 노역으로 착실히 모은 돈 70여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화자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사이 돌아가셨다. “평생에 야구르트 한 줄을 사 보는 것이 소원이던 우리 어머니요, 이 돈으로 몽땅 야구르트를 사서 어머니 산소에 뿌릴 것이요 나는 지금 어머니 산소에 가는 길이요” 그때 역무원 두 사람이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그가 승객을 괴롭히는 줄 알고 번개처럼 팔장을 꼈다. 그는 끌려 가면서 “야! 모자 쓰고 완장 차고 있으면 다인 줄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화자에게는 울부짖던 그의 마지막 말이 잊히지 않았다. 아차, 가기 전에 “우리가 갑장이라는 말을 할 걸….”



한수연의 수필은 문장과 비유와 주제가 잘 어울리는 작품들로 빛났다. 한 사람이 빚는 문학이 등단 50년 가까이에서 한 꾸러미의 역작으로 읽히는 일은 결코 범상한 일은 아니리라.

이 글이 끝나가는 중에 한수연의 본령인 동화 신작집이 택배로 왔다. ‘비가 오면 별들도 우산을 쓴다’(도서출판 경남)이다. 요즘 의외로 지역 출판사에서 중량감 있는 창작물이 출간되어 지역문예 진흥이 가시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감사할 일이다. 수필을 읽다가 동화로 들어가면 빨리 감이 잡히지 않는데 역시 한수연 동화는 일반 우수소설적 무게에 뒤지지 않게 다가왔다.

제목이 눈에 콕 들오는 것에 눈길을 주리라 작정하고 보았는데 책 이름도 좋았고, 빨간코 빵장수, 메아리가 보았다, 임금님 된 몽당연필, 이야기하는 칼 등등 구슬처럼 예쁘게 구르는 듯한 제목이었다. 그 중 ‘이야기하는 칼’을 골랐다.

‘이야기하는 칼’이라 했으니 뭔가가 있을 듯했다. 이 동화에는 구구단을 못하는 영세(나)- 똑똑한 윤희 부반장, 영세의 아재 득보 세사람이 나온다. 재미 있는 것은 한수연의 수필에서처럼 동화에서도 똑똑하기보다 구구단을 잘 못외우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작가이기 전에 교사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초점을 좀 부족한 사람쪽에다 두는 것이 아닌가 한다. 스승의 길에 들어선 작가라 보면 좋을 것이다.

윤희는 그날 빨간 자동연필깎이를 가져와 자랑했다. 윤희는 부반장으로 구구단 외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과후에 지도했다. 윤희는 며칠 째 7단 구구단을 외지 못하는 영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영세는 번번히 ‘칠사 이십사’에 걸렸다. 다시 해, 칠사 이십팔 열 번을 다 외자 윤희는 겨우 영세의 연필심을 우두둑 꺾어버리고는 제 자동연필깎이 속에다 넣어버렸다. 윤희는 연필깎이에서 나온 연필밥까지 영세의 필통 속에 담아주었다. 영세는 빨간 연필깎기의 요술을 득보 아재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칠사이십팔을 스무번이나 외우고 교실을 나왔다.

득보아재는 할머니의 먼 친척으로 새어머니의 구박을 피해 영세네 집으로 와 산다. 할아버지는 득보에게 “득보야 영세가 1학년이니 너도 1힉년이다 생각하고 이제부터라도 글을 배워라” “예 할아버지” 그러나 득보는 좀체 글자를 깨치지 못했다. 비오는 날이면 제일 먼저 우산을 들고 학교로 달려오는 사람이 득보 아재다. 영세는 아재의 등에 업혀 코를 대며 냄새를 맡았다. 사랑방 먹물냄새 그리고 영세의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 냄새…. 그래서 득보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영세는 자동연필깎이로 깎은 연필을 득보 아재 눈앞에 들이대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랑했다. 한참 연필을 구경하더니 “영세 니도 할아버지한테 자동기계 사달라고 할끼제?” “그럼 우리가 면장네보다 부잔데 그까짓 자동깎이 하나 못살라고?” “그럼 나하고 영세 사이도 점점 멀어지겠구먼….”

영세는 단박에 득보 아재의 쓸쓸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동기계 안 사, 난 아재 이야기 듣는게 더 좋아. 아재가 손으로 깎아주는 연필이 더 좋단 말이야.”

그 득보아재는 영세가 4학년 올라가던 봄에 데릴사위가 되어 먼 곳으로 장가를 갔다. “걱정 마. 아재 그 이야기하는 칼만 주면 아재 대신 연필 한 자루에 이야기도 한 자루씩 해가며 내가 깎을께” 영세는 언젠가부터 득보아재의 이야기하는 칼을 탐내고 있었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만 득보와 영세 사이의 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헤아려내는 동화로 깊어졌다. 평론가 최미선은 한수연 동화에 대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탁월한 묘사력을 가졌다. 서사 구성에서 묘사의 중요성은 글을 한 편이라도 완성해본 사람이라면 절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서사에서 묘사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어쩌면 서사 전체를 죄우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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