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지방은 기회 조차 없었다
이건희 미술관, 지방은 기회 조차 없었다
  • 이은수
  • 승인 2021.07.0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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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립 확정에 도내 지자체 강력 반발
“문화분권 역행…말로만 균형발전” 비판
결국 서울이었고 지방의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정부가 7일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을 한 곳에서 전시하는 미술관 건립 후보지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 2곳으로 결정한 가운데 그 동안 유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온 도내 지자체들이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창원시, 진주시, 의령군 등 해당 지자체들은 “정부가 지방을 버렸다”, “허울뿐인 지역균형발전”, “문화 분권 역행”이라는 격한 단어들을 쏟아내며 정부를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추진위원회는 이날 창원시청 정문에서 성명서를 통해 “문체부의 발표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최우선적 국정과제로 표방해온 현 정부의 자기부정”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망국적 결정”이라고 규정하며 “서울공화국을 부추겨 전국을 수도권과 지방으로 양분하는 분열정책은 국가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건희 회장의 숭고한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고인의 뜻을 받드는 유족의 입장에서도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해 “국립문화시설 지방 확충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하면서, 문화분권을 위한 최적의 대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건립’을 제안했다.

조규일 진주시장도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한 유감 표현과 함께 대안으로 서부경남만의 특화된 문화공간 조성을 약속했다.

조 시장은 “정부의 이번 발표는 문화분권과 문화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시대적 요청과 지자체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단지 현재의 문화환경과 여건만을 고려해 판단했다”며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진주시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 위원회’를 구성하고 유력 출향인사들을 중심으로 재경유치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활발한 유치활동을 전개해왔다. 시는 ‘이건희 미술관’은 유치하지 못했지만 향후 근현대 국·공립 문화시설 유치를 통해 서부경남만의 특화된 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조 시장은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이 옛 진주역 철도부지로 이전하면 현 국립진주박물관은 비게 되고, 소유권은 진주시로 전환된다”며 “이 빈 공간에 100억원을 투입해 리모델링을 실시하고 특화된 국·공립문화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올 하반기에는 국·공립 문화시설 유치를 위한 타당성 분석 용역을 실시해 문체부의 지역문화시설 설치방향에 발 빠르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뿌리를 앞세워 범군민 유치전을 펼쳐온 의령군도 강력 반발했다. 군 관계자는 “애당초 서울 건립을 염두에 두고 답을 정했고, 생색내기로 지방에 유치전을 펼친 것이 아니냐”며 “처음부터 지방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체부가 서울로 기증지를 결정한 이유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군 관계자는 “문체부가 내세운 국가 기증의 취지 존중과 기증의 가치 확산은 지방에 건립됐을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만약 기증자의 고향에 들어선다면 그 기증 가치가 더욱 빛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태완 군수는 “의령에 무조건 건립해야 한다는 지역이기주의로서 미술관 건립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정부의 문화분권과 균형발전의 결론은 언제나 서울로 향한다. 다른 자치단체와 공동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주민들도 “의령이 아니라도 지방에 분산돼 설립될 줄 알았다”, “말로만 떠드는 지방분권”, “지방은 서울의 문화 식민지” 등 다소 거친 반응을 보였다. 의령군은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이자 이건희 회장이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그동안 활발한 유치전을 펼쳐왔다.

경남도도 유감의 뜻을 밝혔다.

도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발표를 통해 정부는 유족들의 기증 취지 존중 등을 이유로 서울 건립을 결정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지방은 또다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더 이상 지방의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과 기대, 국민의 문화 기본권 향상과 문화분권에 대한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는 국립현대미술관 남부관 건립을 비롯한 국립문화시설 확충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했다.

도는 이러한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경남도는 그동안 이건희 미술관 동남권(경부울) 유치를 주장했으며 영남권 시·도지사 회의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전국 공모로 추진해 줄 것을 건의해 왔다.

국민의힘 경·부·울 국회의원 31명도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에 두겠다고 발표한 적 없다고 밝힌 문체부가 서울로 결정한 것은 지역균형발전, 지역문화분권은 아랑곳없는, 오로지 ‘수도권 중심주의’ 발상”이라고 비판하며 “서울 유치 결정을 취소하고 국회 공론화 과정을 통해 유치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재부종합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유치추진위원회는 7일 오후 창원시청 정문에서 문체부의 ‘이건희 기증관 서울 건립 결정 발표’ 규탄 및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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