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래 국립경상대학교 신문방송사 편집장
지난 8일, ‘제32회 도쿄 올림픽’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올림픽이 연기되는 등 시작이 순탄치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빛났다. 특히,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는 혼성 단체전, 여자 단체 및 개인전에서 모두 우승하며 올림픽 사상 첫 양궁 3관왕에 올랐다.
나는 안 선수의 기록에 기뻐한 것도 잠시, 그를 둘러싼 사건에 분노해야 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는 안 선수의 쇼트커트 머리, 아이돌 그룹 ‘마마무’의 팬이라는 점 등을 들어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 금메달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덧붙여, 음지의 언어를 그대로 빌려온 일부 언론은 이 일을 ‘안산 페미 논란’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티페미니즘 커뮤니티의 표현대로 선수 이름 뒤에 ‘페미 논란’을 붙인 건 분명한 동조였다. ‘안산,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논란되어 마땅하다’라는 소극적이고도 분명한 동조와 방관.
언론을 타고 며칠간 불붙었던 이 사건은 BBC, 로이터통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의 새로운 정의를 만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들은 페미 논란 대신 ‘온라인 학대(online abuse)’, ‘공격(attack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철저히 가해 집단의 행위에 집중한 표현이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 사례가 스치지 않는가? 피해자에게 가명까지 부여하며 ‘나영이 사건’이라고 부르던 것이 ‘조두순 사건’으로 정정된 건 최근의 일이다. ‘왜 하필 그 시간에 그런 옷을 입고 그 길을 걸었을까?’, ‘왜 그는 어리석게도 지인에게 거액을 빌려줬나?’… 모두 안타까움의 탈을 쓴 방관자의 문장이다. 나는 피해자의 신상, 그날의 행적, 사상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사건 서술에서 피해자가 등장해야 한다면, 그건 ‘피해의 크기’, ‘회복을 위한 사회의 역할’ 등으로 족하다.
나는 안 선수에 대한 최근의 ‘온라인 학대’ 역시 성별 갈등의 측면보다 언론이 단어 두 개로 범한 일을 말하고 싶었다. 혼란의 21세기, 섣불리 쓴 문장 하나도 진실인 양 영원히 ‘박제’되는 오늘날. 모두가 방관자 역할에서 벗어나, 껍데기에 불과한 자극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실체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담론하길 바란다.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야 한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이나래 국립경상대학교 신문방송사 편집장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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