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석별, 그 이후의 시간들
[경일춘추]석별, 그 이후의 시간들
  • 경남일보
  • 승인 2021.09.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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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달 (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퇴임’이란 임직에서 공적인 일원으로 있다가 그 기간이 끝나고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인 개인으로 귀속되는 순간이다. 한 개인이 직장이라는 단체에 소속됐던 전 과정을 도덕적으로 평가 받는 날이다. 동시에 한 개인의 인간관계와 질을 평가받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퇴임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 해 필자는 어느 분의 퇴임식에 함께했다. 그는 지난날 군민들이 비바람을 맞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혜성처럼 나타나 손잡아주고 우산도 받쳐 주었다. 그래서 평일, 주 야, 공휴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필요한 이들의 품에 있었다. 어떤 일에 임할 때,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깨끗한 도화지만 준비해 두고 다른 이가 채색하길 기다렸다. 그런 그의 퇴임식 날, 감사패 수여는 16차례까지 이어졌다. 그런 시간의 나열에 사람들은 지칠 줄을 모르고 석별의 시간들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들은 재직기간에 그려진 외부 사람들의 평가에 의한 채색된 그림이 아닐까? 그리고 퇴임사 마지막에 한 여인에게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당신은 39년 동안 내가 아름답게 공직에 임할 수 있도록 초석이 돼 주었다. 그래서 그동안 사회의 공인으로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그 젊은 시간들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용서 해 달라. 이제 인생 2막에는 그녀의 단 하나뿐인 그림자가 되겠다”

누구나 이런 고해성사가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들의 사회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국가는 절로 건강하고 싱싱한 매일이 될 것이다. 그 날, 그 석별의 발걸음이 왠지 무겁지만 않은 귀가였다.

퇴임은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초석을 선보이는 날이기도 하다. 공인에서 한사람의 배우자, 부모로 그리고, 노부부의 자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며 ‘가정’이라는 소집단으로 진입하는 나들목이다.

결혼생활 20년 이상의 부부가 이혼을 하면 ‘황혼이혼’, 결혼생활에서 해방을 원하는 부부가 헤어져 살면 ‘졸 혼’이라 한다. 이런 단어가 1990년대의 신조어로 탄생할 정도로 그것을 실행하는 부부가 늘어났다. 이런 황혼이혼, 졸 혼이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노인소외와 노인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온전히 가정이란 집단이 분식회계 되는 이 시대에 대한 심각한 고해이다.

지난 그 석별을 나눈 님, 그림자의 열기가 아직 사라지지도 않는데 그 님의 실천은 어디쯤 머물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그런 님을 친구로 삼는 이 사회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박행달 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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