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숲 이야기] 청초한 매력, 구절초
[박재현의 숲 이야기] 청초한 매력, 구절초
  • 경남일보
  • 승인 2021.10.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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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에 휩싸인지 2년, 거리두기에 어느덧 익숙해진 사람들의 곁에 반려식물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식물 키우기가 주는 마음의 평안과 정서적 안정은 단지 심리적인 기대감을 넘어 실제 치료효과를 입증받는 시대다. 실제로 원예치료라는 말은 1945년 2차세계대전 종선 무렵부터 쓰였고 공식적으로 미국원예치료협회에서 치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원예활동과 관련한 활동이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식물을 기르며 얻게되는 오감을 자극하는 활동은 취미생활과 원예치료의 효과를 만끽하게 한다. 혹은 DNA 속 숨겨진 채집 본능이 베란다 텃밭의 방울토마토 한 알로 불타 오르기도 한다.

이 작은 녹색 생명체가 주는 인생의 그린라이트를 이제 한 송이 켜보자. 꽃 한 다발을 사는 일에 100가지 이유가 필요했던 옛날 사람식 생각을 버리고 아무 이유없이, 편의점에라도 들리듯 꽃집을 찾는 날들을 기약하며 오늘부터 박재현 교수의 숲 이야기를 만나본다. 편집자주



 
 
[박재현의 숲 이야기] 청초한 매력, 구절초



가을의 꽃을 하나 꼽으라 하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구절초를 떠올립니다. 가을 녘 청아하게 피어난 꽃이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풍경은 흥얼흥얼 노래가 절로 나오는 풍경입니다. 산산(山山)에 구절초가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면 꽃향기도 기분 좋게 걸음이 가벼워지죠.

오래전 대학 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고 녹화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도로나 길을 만들면서 길 옆의 비탈면을 자르게 되면 비가 많이 쏟아질 때 빗물에 흙이 쓸려 내려가게 됩니다. 이렇게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식물로 녹화시켜주어야 하죠. 그때 꽃이 피는 초본류를 개발하면 좋겠다고 했죠.

그중에 최고라고 알려준 초본류가 구절초 입니다. 물론 산들에 나서보면 흔하게 피니 “이렇게 많은데 뭐…”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더군요. 그래서 가을이 되면 구절초 종자를 많이 모아 놓으라고 했죠. 빈 땅에 뿌려놓고 한없이 번식시켜 보라고요. 몇 년만 그렇게 하면 분명 큰 돈이 될 거라 귀뜸했죠.

그 옛 시절에는 녹화사업에 우리 꽃 종자가 많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빨리 자라 초록빛으로 무성하게 훼손한 비탈면을 가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들 했습니다. 그때 흔하게 사용하던 초본류는 대부분 외국에서 도입한 목초류였지요. 생각해보면 그럴 이유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도입하는 목초류는 목장에서 소먹이로 쓰는 풀인데요. 소먹이 풀들은 빨리 자라고 풍성해야 먹이로 쓰기 좋기 때문에 성장속도만은 따를 것이 없었죠. 그러니 비탈면에 이 외국 목초 종자를 뿌려놓으면 엄청난 속도로 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외국 목초이다보니 문제가 있습니다. 주변의 우리나라 식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죠. 우리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는 가운데 덩그러니 초록빛으로 외래 목초가 자라고 있으니 경관적으로도 어색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꽃이 피는 식물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종자를 많이 확보해서 그런 준비를 미리 해 놓으면 소위 ‘대박’이 날 거라는 ‘건설적인’ 조언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년 후 제 말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제 말을 귀담아들었고, 그걸 실천에 옮겼던거죠. 그 친구는 작은 녹색 조언 하나로 중소기업을 일굴 정도로 대박을 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겨두지요.



구절초는 넓은잎구절초 Chrysanthemum zawadskii Herb. ssp. latilobum (Maxim.) Kitagawa를 말하는 겁니다. 국화과(Compositae) 국화속(Chrysanthemum Linne)인데요. 여기엔 산국(개국화), 쑥갓, 감국(국화, 들국화), 이화구절초, 마키노국화, 국화, 가는잎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가는잎구절초, 한라구절초, 서홍넓은잎구절초, 울릉국화, 낙동구절초, 남구절초가 있어요. 지역마다 구절초 이름이 다르게 부릅니다. 구절초는 국화과라서 향이 아주 좋습니다. ‘가을은 국화’라 하지만 저는 구절초에 더 애정이 갑니다. 꽃대가 가냘프고 하늘거려 청초하다고 할까요. 도톰하고 풍성한 국화와는 색다른 매력이 구절초에는 있습니다. 구절초나 감국꽃을 따다 말려두었다가 베개 속에 넣으면 두통도 치료하고, 잠잘 때 국화향이 솔솔 배어나와 건강에도 좋고 잠도 잘 오지요. 차로도 많이 드시는데요. 감국을 따다 말려 차로 우려내 마시면 눈에도 좋다며 세간의 인기를 끌고 있지요. 은은한 노란빛이 우려난 차색도 곱지만 향도 정말 일품입니다. 향긋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 거지요.

김용택 시인의 ‘구절초꽃’이란 시가 있어요. 강가에 핀 구절초를 보면서 걷다 보면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시죠. 누군가는 가을을 쓸쓸하다고 하는데요. 구절초를 보면 쓸쓸한 기분보다는 애잔한 기분이 들지요. 쓸쓸한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랄지…. 청초한 구절초를 보면 떠나간 연인을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몰라요.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안도현 시인은 ‘구절초의 북쪽’이란 시에서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 쪼그리고 앉아 본 적 있는가”하고 묻습니다.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 햇빛이 / 잠깐씩 세 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라고도 묻습니다.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라고 안도현 시인은 그렇게 또 묻습니다. 시인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구절초는 100g에 53kcal로 칼로리가 적어 다이어트에 좋다는데요. 생리통 예방이나 여성 병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지요. 구절초는 음력 9월 9일에 채집해 쓰는 게 효능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절초일까요. 아홉 개의 마디가 있다고 해서 구절초이기도 하죠. 구절초 줄기나 잎을 물에 넣어 약한 불로 다려 마시면 치통에도 효능이 있고요. 혈액 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에도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감기가 많은 환절기에는 면역력 강화에도 좋다네요. 몸속 해독작용으로 소염작용과 남성에게 좋다는 것도 있다네요. 눈질환에도 좋아요. 간의 열을 내려주고 머리와 눈에 있는 열을 내려주기 때문에 눈에 생기는 여러 질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구절초는 하얀꽃과 보라색 꽃이 많습니다. 남보랏빛은 드높은 가을 하늘과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요.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구절초꽃이 하늘하늘 흔들리면 누구라도 가을이란 정취에 빠져들 것입니다. 구절초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걸어보세요. 저절로 기분도 상쾌해질겁니다. 상쾌한 기분에 구절초 꽃밭을 누비며 코로나19도 싹 잊고 싶은 가을이네요. (경상국립대학교 교수·시인)



※구절초와 쑥부쟁이 : 구절초는 잎이 국화잎처럼 생겼는데요. 쑥부쟁이는 잎이 삐죽해요. 그걸로 구분하는 게 제일 빠른데요. 구절초꽃은 쑥부쟁이꽃보다 크지요. 언뜻 보면 쑥부쟁이라고 알기 쉽지만,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엄연히 다르지요. 꽃 색이 비슷하고 가을에 흔히 피어 있는 꽃이라 착각하기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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