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대통령의 ‘거울’이 궁금하다
[경일시론]대통령의 ‘거울’이 궁금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6.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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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우리 정부가 부족했던 점을 거울삼아서 더욱 잘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의 ‘거울’ 메시지를 그 진의와 관계없이 국정 나침반으로 삼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시감을 느끼게 할 만큼 닮은 꼴 행보를 보일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이다.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양산 문 전 대통령 사저 욕설비방 불법시위’ 질문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인데 …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나”라는 답변이 대표적이다. 마치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극성 지지층의 무차별 문자폭탄에 대해 ‘양념’이라고 표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전직 대통령 가족과 이웃 주민들이 겪는 피해가 위험 수위를 넘어선 상황인데도 ‘법대로’를 강조하며 선긋기를 하는 거나 ‘양념’ 발언은 오십보백보다. 원론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보다 절제된 표현으로 ‘법으로 시위는 막을 수 없겠지만, 과격한 불법시위의 자제를 당부하고, 문 전 대통령 가족과 주민들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보냈다면 어땠을까. 포용과 배려,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 같아 아쉽다.

‘민변 도배’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필요하면 또 하겠다”는 건 ‘한판 붙어 보자’는 오기에 다름 아니다. 전 정권에서 그랬다면, 반면교사 삼아 검찰 출신 측근 인사에 신중을 기해야 했었고, 기왕 인사를 한 사안에 대해서는 ‘민변 도배’ 같은 발언으로 각을 세울 일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메시지를 냈어야 했다. 도어스테핑 같은 윤 대통령의 대표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후한 점수마저 평가 절하되는 악수를 둔 셈이다. ‘같은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이다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다수의 상식을 가진 국민들은 같은 편의 대통령이 아닌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게 바로 ‘지성’ 아닐까 싶다.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울’이 궁금해진다. 한 인물의 ‘거울’은 교육과 치열한 삶을 통해 만들어지고, 영향력은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하물며, 필부가 아닌 대통령의 거울이라면 개인의 일생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영향력이 확장된다. ‘대통령의 거울’은 국격이 되고 국정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타인의 사상과 이념을 통해 자기 고유의 가치와 철학을 창출해 내고, 그것을 다시 널리 알리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간다. ‘거울’을 통해서 완성된 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해서 윤 대통령의 ‘거울’이 궁금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대통령의 거울’을 한번 쯤 공유했으면 좋겠다. ‘반지성주의’ 타파를 주창했던 그의 취임사 정신에 걸맞게 제대로 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주기 바라는 의미에서다. 또한 다른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나 봉건 제후들은 역사적인 인물이나 책을 ‘군주의 거울’로 삼아 리더십을 키웠다. 고대 그리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같은 호메르스의 작품은 서양의 대표적인 ‘군주의 거울’이라 할 수 있겠다. 스티브잡스가 중퇴한 것만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리드칼리지에서는 신입생들에게 호메르스의 작품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책 속의 주인공을 통해 지혜와 용기, 정의를 배우고, 리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으로 무장된 지도자를 양성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의미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사마천의 ‘사기’가 최고의 ‘군주의 거울’로 손꼽히고 있다. 국가나 조직 경영의 지침서로 활용되는 ‘거울’이 된 데는 그만한 철학과 가치가 담겨져 있어 그렇다. ‘대통령의 거울’로 인문학적 철학과 가치가 담겨진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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