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고기리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시켜야
[경일시론]고기리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시켜야
  • 경남일보
  • 승인 2022.07.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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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지리산 자락이 또 소란하다. 이번엔 남원이다. 몇 년 동안 하동 쪽에서 ‘지리산 산악열차’를 주문처럼 외치더니, 남원에서는 은밀하게 때로는 대놓고 일을 벌이고 있다. 단계별로 추진하는 것이 하동보다 한 수 위다. 남원시는 최근 철도기술연구원이 시행한 ‘산악용 친환경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에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사업’이 최종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국내 최초의 산악열차 사업이 이르면 내년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산악 열차가 개통되면 1610억원의 생산유발과 1128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기대된다’고 들떠있다. 국내 1호 산악열차인 만큼 환경논란을 잠재우고 세계적인 친환경 명품 산악열차로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몰이에도 나서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교통기본권 보장이라는 포장된 명분을 앞세우고, 궁극적으로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리산을 갉아 먹겠다는 심산이다. 남원의 지리산 산악열차는 1차로 2026년까지 278억원을 들여 운봉의 고기 삼거리∼고기댐 1㎞ 구간에 시범노선을 만들고, 차량기지 및 검수고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어 육모정∼고기 삼거리∼정령치에 이르는 13㎞ 구간에 981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상용 운행을 위한 실용화 노선도 만든다는 게 핵심이다.

뜯어보면, ‘시범사업 1㎞ 구간’은 미끼상품 격이다. 철도기술연구원의 공모 성격에 딱 맞아떨어질 수 있도록 산간벽지 주민들의 교통기본권 증진을 위한 복지사업으로 포장한 것이다. 실제로는 지리산 산악열차를 통한 관광수익이 목적이면서도 복지사업으로 위장해 까다로운 백두대간법 위반을 피하겠다는 은밀한 의도가 읽힌다. 지역주민들의 교통기본권 증진을 위한 친환경 전기열차 사업을 마무리 한 다음, 육모정에서 고기마을을 거쳐 지리산 정령치까지 상용노선을 깔겠다는 이야기다.

지리산 산악열차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남원시민연대를 비롯한 영호남 시민사회 단체들이 최근 성명서를 통해 “시범노선 1㎞ 구간은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상용노선 13㎞ 구간은 명백히 자연공원법 위반이다”면서 “반환경적인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을 백지화하라”고 촉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시범사업이 추진될 경우의 나비효과다. 국립공원 지리산을 공유하고 있는 하동 산청 함양 구례서도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군수가 바뀌면서 잠시 멈춤 상태에 있는 하동군으로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리산 뿐 아니다. 설악산에서도 양양 속초등지에서 지리산 산악열차 추진과정을 예의 주시하며 벼르고 있다. 해상국립공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자체별로 경쟁하듯 벌이고 있는 케이블카, 산악철도 개설은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국립공원마저 무너진다면 최후의 보루가 사라지는 것이다. 최소한 국립공원 구역만큼은 살려야 한다.

사실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지자체들은 근년 들어 국립공원의 다양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충분히 ‘팔아먹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수록 자연자원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보면 있는 그대로만 잘 관리해도 충분하다. 경쟁적으로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개발한다고 해서 특별히 나아지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단순한 계산상의 경제적 이득은 보일지언정 제대로 된 국립공원의 가치에 비견할 수 없다. 산을 정말 유익한 자원으로 이용하려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게 그냥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 한다. 겨울철 정령치나 성삼재 도로가 얼어붙어 그나마 지리산이 잠시 쉬는 틈조차 빼앗아 가려는 산악열차는 마땅히 백지화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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