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뗄 수 없는 춤의 향연 전국무용제 단체 경연
눈을 뗄 수 없는 춤의 향연 전국무용제 단체 경연
  • 백지영
  • 승인 2023.10.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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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팀 현대 무용 ‘유랑자’ 몸짓의 에너지에 압도돼
경남 팀 한국 무용 ‘김덕구’ 휘날리는 옷자락도 예술
지난 7일 오후 6시 40분께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둘 로비로 들어섰다.

제19회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높은 관심을 모은 야구 결승과 남자 축구 결승전을 코앞에 둔 시각, 소파에 앉아 TV를 켜는 대신 이곳을 찾은 이유는 ‘제32회 전국무용제’.

성산아트홀 앞마당 오색찬란 조명으로 빛나는 춤 실루엣 조형물과 대극장 로비 2층 난간에서 드리워진 날짜별 단체 경연 현수막이 무용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날은 전국 시·도를 대표해 출전한 16개 팀이 하루 2팀씩 8일에 걸쳐 기량을 겨루는 단체 경연 둘째 날. 경남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밀양 김현정무용단과 대구지역 대표로 선발된 인코드프로젝트의 무대가 펼쳐졌다.

먼저 시작한 작품은 대구 인코드프로젝트의 창작 현대무용 ‘유랑자(김인회 안무)’.

반복되는 삶과 죽음 속, 시간이란 수레에 올라타 한없이 굴러가는 순환의 여정을 다룬 철학적인 작품이다. 설명글만으로는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이 오르면 복잡한 해석은 잊고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압도된다.

무대에 누운 십수 명의 무용수가 팔다리를 하늘로 뻗은 채 허우적거리는 첫 등장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 등 멜로디가 아닌 효과음에 온몸을 벌벌 떠는 모습은 인간이 아닌 미물처럼 느껴졌다.

작품은 ‘무용’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유려한 멜로디에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우아한 군무와는 거리가 멀다. 하나의 무대 위 여러 그룹으로 나눠, 서로 다른 움직임에 몰두한다.

바닥을 향해 엎드린 여성의 양 발목을 잡은 채 질질 끌고 가는 남성, 무대 둘레를 질주하는 여성, ‘반지의 제왕’ 속 골룸을 연상케 하는 동작으로 무대를 기는 무용수들. 서로 몸짓은 제각각이지만 묘한 통일감이 있다.

남성 무용수들이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린 대형 원판 위에 올라 주인공은 핀 조명을 내리쬐며 몸짓을 이어간다. 암흑 속 홀로 빛나는 주인공의 움직임을 주시하다 보면, 어느덧 원판 밑으로 불빛이 들어오고 그 아래 바르작거리는 인간 군상이 드러난다.

작품을 보다 보면 이 팀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무용수가 춤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는 열정을 새삼 깨닫곤 괜스레 찡한 감정에 젖게 된다.

뮤지컬 앙상블의 화려한 군무에 매료된 이라면, 그 ‘맛보기’를 넘어 이런 ‘찐’ 무용을 보면 더 큰 전율을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팀 작품이 끝난 뒤 무대 전환 시간, 경품 추첨을 마친 사회자가 가장 먼 곳에서 온 관객을 찾아 나선다. 밀양, 경북 구미, 경기 고양에 이어 경남팀을 응원하기 위해 멀리 태국에서 왔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객석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어 시작된 경남 김현정무용단의 창작 한국무용 ‘金德九 김덕구(김효정 안무)’는 대구 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덩더꿍 타악기 장단에 맞춰 단체로 무대를 뛰어오르고 회전하는 모습은 길게 휘날리는 옷자락조차 예술로 분하게 했다. 앞 작품이 인간의 신체로 보여줄 수 있는 몸짓과 에너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화려한 단체 무용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내 어른 아이’는 부제를 단 작품은 기억을 잃어가며 ‘어른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굽은 등을 통해 그가 짊어졌던 가장의 무게를 반추한다.

굿 소리와 종소리를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채 바닥을 벅벅 닦으며 등장하는 여성과 거꾸로 매달린 나무 등이 관객에게 좀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4개월 전 전국무용제 예선격인 경남무용제에서 선보였던 동명의 작품과 전반적인 느낌은 비슷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옷을 입었다.

예선은 20분 분량, 본선은 40분 분량의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규정상 공연 시간이 배로 늘어나면서 상당 부분을 추가한 까닭이다.

주인공이 아버지 김덕구의 겉옷을 거꾸로 껴입은 채 춤을 추는 장면이나 무거운 봇짐을 메고 등장한 단체 무용수들의 허리가 점점 굽어가는 장면 등은 예선과 비슷한 듯했지만 그외 많은 부분이 보강됐다.

그 덕인지 예선 때는 다소 난해하게도 느껴졌던 작품의 줄거리를 비교적 쉽게 따라갈 수 있어, 당시보다 더 잘 와닿는 느낌이었었다.

경연을 찾은 관객들은 각 팀을 향해 기립 박수나 휘파람, ‘브라보’ 등을 외치며 환호했다.

남편과 함께 무용제를 찾은 진순천(70·창원) 씨는 “무용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다. 대사는 없었지만 알 듯 말듯 이해할 수 있어 즐겁게 봤다”며 “근처에 사는 만큼 성산아트홀에서 경연하는 날은 매일 관람할 생각”이라고 했다.

머리망으로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앳된 얼굴의 무용 지망생들은 함께 온 친구와 인증 사진을 찍으며 전국무용제 관람을 기념했다.

이날 두 작품의 성격이 극명히 달랐던 만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가족 사이에서도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다르게 꼽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평소 흔하게 접해온 춤이 아닌, ‘전국무용제’라 가능한 작품 세계에 감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부산에서 온 자매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이재선(65·창원) 씨는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런 작품은 처음인데 그야말로 경이로웠다”며 “다이나믹하고 강한 힘을 느꼈다”고 감탄했다.

한편 전국무용제 본선 단체 경연은 오는 13일까지 매일 오후 7시 짝수일 3·15아트센터 대극장, 홀수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사전 예약 없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경남 김현정무용단 ‘金德九 김덕구’.
대구 인코드프로젝트 ‘유랑자’. 사진=전국무용제 집행위
대구 인코드프로젝트 ‘유랑자’. 사진=전국무용제 집행위
대구 인코드프로젝트 ‘유랑자’. 사진=전국무용제 집행위
대구 인코드프로젝트 ‘유랑자’. 사진=전국무용제 집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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