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는지 비가 오는지
날마다 마음은 절벽
시간을 녹이며, 온몸을 삭히며
-황주은 시인, ‘시인’
그렇다. 시인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수만 가지 생각과 존재들이 새로운 문장으로 되살아나기를 주야장천 강구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때 모든 존재가 시인에게로 와서 의미가 되거나 현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기다린다는 것은 자칫 허무로 귀결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기다린다. 시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 씨앗이 움을 내기까지 “시간을 녹이”고 “온몸을 삭”혀 가며 기다린다. 그렇다고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 같은 허무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뮈엘 베케트의 그 허무를 이기기 위해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므로. 편지를 기다리며 우체통의 온몸이 녹슬어가듯 시인아, 기다려라. 생의 허무는 걷히고 말 것이니. 시인·디카시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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