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훈련병과 전투기
[경일춘추]훈련병과 전투기
  • 경남일보
  • 승인 2024.04.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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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수필가
김유진 수필가


오래전 일이다. 우리 가족은 남편의 직업상 군부대 관사에서 살았다. 당시만 해도 반상회 모임이 있었다. 아파트 동별로 한 달에 한 번씩 집집마다 돌아가며 반상회를 열어서 이웃 간에 인사와 안부도 주고받았다. 서로 살면서 불편함이 생기면 반상회를 통해 조율을 할 수 있어 나름대로 괜찮은 제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반상회는 없어지고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가끔 층간 소음으로 인해 생기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반상회를 통해 이웃끼리 서로 인사라도 하고 산다면 불행한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의 일이다. 남편은 교육장교로서 항상 교육생들을 걱정하며 살았다. 그해 10월 반상회는 사령관이신 소장님께서 훈련소 강단에서 관사가족 전체 반상회를 소집했다. 관사 약 450여 가구 대부분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

사령관님은 격려말씀과 함께 관사 생활의 불편한 점이 있는지 등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그날, 나는 사령관님 말씀을 들으면서 감전된 듯 한 쇼크를 받았다. 당시의 충격은 30년이 지났는데도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고 있다.

‘여기 훈련소에 입대한 젊은이들은 각자 가정의 소중한 보배들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말에 모두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리고는 사령관님은 우리 공군에 제일 비싼 전투기가 얼마인지 아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수백억 수천억이 된다 해도 훈련소 저 어린 신병 한 사람 목숨보다 쌉니다. 왜냐하면 전투기는 문제가 생기면 나라의 세금으로 교체를 할 수 있지만 훈련소 신병 한 명의 목숨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 한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이며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안전사고도 없이 훈련을 다 마칠 수 있도록 훈육관이 특별하게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집집마다 자식이 한 명 아니면 두 명인 이 시대에 국방의 의무를 위해 우리 공군에 입대한 훈련병을 자식처럼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관사에 살면서도 아들을 군에 입대시키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는 게 우리 부모 마음입니다.’

짧은 훈시지만 뜨거움을 느끼게 한 말씀이었다. 통합반상회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씀을 남기신 분은 공군교육사령관 이기현 소장님이었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초로의 나이로 인생 2막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신병 한 명의 목숨이 전투기 몇 대보다 소중하게 여기시던 그분은 뼛속까지 군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푸른 제복을 입은 병사와 마주치면 전투기보다 소중한 존재라 생각을 한다. 세상에 귀하고 보배로운 물건은 많다. 하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 그 소중한 목숨을 지키는 군인이 바로 참 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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