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공공기관 소방안전관리 규정’이 제정된 것은 2003년 11월의 일이다. 그 해 발생한 끔찍한 대구지하철 화재와 천안초등학교 합숙소 화재를 계기로 공공기관의 소방안전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일반 소방대상시설물과 달리 공공기관은 소방안전관리자 선임자격을 감독직 직위자로 정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공기관의 소방안전관리 업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상주하는 학교의 소방안전관리 책임자는 누구일까. 학교장일까. 아니면 6~8급인 행정실장일까. 안타깝게도 20년이 지나도록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학교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로 아이들이 다치고 부상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책임공방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19년 9월 발생한 김해 영운초등학교 ‘방화셔터 끼임 사고’가 대표적이다. 사고는 당시 8살이던 피해 학생이 갑자기 내려온 방화셔터에 목이 끼면서 발생했다. 무산소성 뇌손상을 입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책임자 처벌을 못하고 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만들어졌으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당시 학교 행정실장에 대해 소방안전관리자 책임을 물어 벌금 1000만원을 확정했다. 학교장은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됐다. 그렇다면 학교 소방안전관리자는 행정실장일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보니 파장은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최근 진주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관행에 따라 행정실장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하는 지시를 내렸지만, 행정실장은 법령상 감독직에 있는 학교장이 선임돼야 한다며 거부하고 있다. 경남교육노조는 지난 주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학교장의 행위를 일방적인 갑질로 규정하고, 조사를 촉구하면서 학교장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하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 직후에도 행정실장은 감독직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을 포함해 교직원 전체를 지휘·감독하는 학교장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대부분 학교에서 소방시설관리는 행정실장이, 소방훈련과 교육은 교감이 맡고 전체적인 관리와 책임은 학교장이 맡고 있는 만큼 소방감독책임자와 소방안전관리자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육감이나 학교장의 의지만 있다면, 사무분장을 조정해 교장이나 교감이 소방안전관리자를 못할 것도 없다는 시각이다. 실제 전국 1만285개 학교 중 22개 학교는 교장이, 20개 학교는 교감이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되어 있기도 하다.
반면 교육청은 ‘공공기관 소방안전관리 규정’을 근거로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교사들의 반발을 우려해선지 난감한 반응이 역력하다. 교사 입장에서는 교육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에게 소방 시설 점검·관리 등 소방 업무까지 맡기면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한 영역이라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임에 틀림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사고만 없기 바라며 ‘폭탄 돌리기’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같은 큰 재난을 당하고서도 여전히 안전 불감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다. 그것도 교육현장에서 그러니 답답할 노릇이다. 법률상 명확한 책임소재 구분이 필요하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법률과 규정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교육현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학교장과 행정실장의 공동 안전 관리자 선임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책임소재를 서로 떠넘길 게 아니라 공동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해 교육현장의 재난을 예방하는 게 무엇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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