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50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4.18(목)4.17(수)4.15(월)4.12(금)4.11(목)4.10(수)4.9(화) 오늘의 저편 <13> 학동마을은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첫새벽에 남산으로 오른 진석은 아버지의 빈 무덤을 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그를 묻기 위해. 바로 그 옆에 광목에 둘둘 말린 김씨의 시신이 있었다. 등불을 든 여주댁은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관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날만 밝으면 동료를 찾으러 순사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올 것이었다. 그 동안 진석은 가슴으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수도 없이 그려댔다. 기억에 없는 그 모습을 핏줄의 본능적인 그리움으로 녹여 무작정 멋지게만 묘사했다. 빙그레 웃는 초상화를 그려놓았을 땐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1 오늘의 저편 <12> 한발 앞서 뒷산 자락에 도착한 여주댁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나환자에게 눈을 꽂으며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에게 와락 달려들어, “여보, 진석 아버지!”라고 하곤 그 위에 맥없이 풀썩 쓰러졌다. 이어 통곡도 울음도 아닌 ‘꾸르륵꾸르륵’ 소리로 목젖을 끓이며 숨진 나환자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도 모자라 뒷산에 저미어 들었다. 그 장면을 화성댁이 목격하고 말았다. 비극적인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 빤히 보이고 있어서 눈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어이없이 치켜든 눈꺼풀을 제자리로 내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1 오늘의 저편 <11> “이 악질 왜놈의 쌕끼얏!” 그는 사나운 몸짓으로 순사한테 와락 달려들었다. “이 쏀징 놈은 뭐야?”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총을 놓치고 만 순사는 독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 순사 놈의 쌕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순사의 배 위에 올라탄 그는 상대의 가슴과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으윽, 이 조센 놈의 썍끼, 네 놈의 살을 깎고 피를 말려 죽일 것이다.” 표독스럽게 뇌까리며 순사는 손끝에서 한 뼘 거리에 있는 총을 집기 위해 손톱으로 땅을 긁어댔다. “흥, 그래?”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누런 천을 벗기 시작했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0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71372373374375376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