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교육과 여유로움
낭만교육과 여유로움
  • 경남일보
  • 승인 2012.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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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겨울이 오니 땔 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雪上) 삼척 냉돌에 변변치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오고 다리 팔 마디가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곧아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해 박박 갈며 하는 말이 “요놈,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

이 글은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에 나오는, 가난하지만 강직한 몰락 양반인 남산골샌님의 추위 대처법으로 참으로 낭만적인 자기 위안이다. 이런 ‘낭만(浪漫)’은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상태 또는 그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를 말한다. 18~19세기 고전주의의 지나친 형식과 계몽주의의 목적성에 반발하여 나타난 낭만주의는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을 거부한 문예사조로 열렬한 감정이나 끝없는 상상, 아름다운 꿈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너무나 자유분방했고 지나친 비현실성으로 50여 년의 생명으로 쇠퇴했지만 낭만적 성향이나 표현은 현재에도 유효하고 많은 이들이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 ‘낭만’은 시는 물론 대중가요의 중요 제재가 되었는데, 가수 최백호도 ‘궂은비와 옛날식 다방의 도라지 위스키, 실연의 달콤함과 첫사랑 그 소녀’를 들먹이면서 ‘잃어버린 것’과 동일시하여 ‘아련하고 아스라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예전에 문학교과서에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은 사람이면 지금도 그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 1946년 독일에서 발표된 이미륵의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도 일제강점기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고향의 그리움을 한 폭의 그림처럼 수놓았는데, 이 소설의 특징도 낭만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또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의 서정적이며 낭만적으로 표현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도 많은 이들에게 오랜 감동을 선사했다. 그래서 낭만적인 시나 소설 몇 편의 감동은 어떤 성교육이나 폭력예방 교육자료보다 그 효과가 더 클 수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 했지만 실은 낭만보다 휴먼의 성격이 짙은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그 사랑했던 사실보다는 사랑하는 과정에서의 낭만적인 상황 때문일 것이다. 이 낭만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여유롭게, 나아가 팍팍하고 각박한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을 것이기에 학교에서의 교사 선발도 전공과 교육학 이론을 달달 외운 사람보다는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조금은 여유롭고 자유로운 심성을 가진 낭만적인 선생님을 뽑으면 좋겠고, 문학교육도 신비평(New Criticism)에 바탕을 둔 분석주의나 기계적인 구조주의보다는 낭만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기계적이거나 분석적인 교육만으로는 휴머니티 형성이 어려울 것이고, 낭만교육이야말로 인간성 함양에 적합할 것이며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고 서정적으로 성장하여 살아가면서 이해와 타산에서 조금이라도 비켜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유로운 품성을 지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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