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6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4.25(목)4.24(수)4.23(화)4.22(월)4.19(금)4.18(목)4.17(수)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7)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7) 최재호 시조시인은 한학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고성 학동에서 서당을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교류하는 인사들 중에 한학자들이 많았고, 산청의 중재 김황선생과 관련되는 일에 참가한 것으로 보아 그렇다. 그리고 그는 창작 시조집 외에 번역시집 ‘하정시집’, 유작집 ‘아천번역문집’을 갖고 있어서 한문세대와 한글세대의 중간 지대에서 한껏 양면의 장점들을 살려가며 살 수 있었다.‘아천문집’을 보면 한문 문장으로 쓰여진 각종 장르의 글들을 번역해 싣고 있다. 물론 그 글들 속에는 한글로 된 문장들도 함께 싣고 있지만 대부 경남문단, 그 뒤안길 | 김귀현 | 2017-03-30 09:3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6) 아천 최재호 시조시인의 이름 자리에 대치되는 직함은 언론인, 교육자, 각종 사회단체장 등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직함들을 놓고 보면 그는 지역사회를 이루는 시설물 같은 총체성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196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진주지역 전반에 영향력을 주는 주도적 인사였다. 최재호의 전반기는 경제인으로 진주전분, 한양양조 사장을 거쳤고 그 이후는 앞에서 나열한 직분들에 고루 관여하게 되었다.직장 개념으로 아천의 생애를 말하라 하면 교육자의 길이 본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1940년에서 경남문단, 그 뒤안길 | 김귀현 | 2017-03-23 10:00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5)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5) 아천 최재호는 문인으로서 만난 동료문인으로는 서정주, 이원섭, 이주홍, 전광용, 설창수, 이경순, 김상옥, 이동주, 송영택, 오학영, 유성규, 이태극, 정진업, 박노석, 구 상, 유엽, 박재삼, 이형기 등이었다.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 문인들이 진주를 거쳐갈 때 아천을 만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그만큼 아천은 품이 넓었다.아천이 개천예술제에 직접 관여하고 있을 때는 파성 설창수가 5.16이후 참의원, 개천예술제 등에서 밀려난 앙금이 채 가시기 전인데도 인간적으로는 서로 대화를 터놓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 경남문단, 그 뒤안길 | 김귀현 | 2017-03-16 10:3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13) 올해는 아천 최재호(我川 崔載浩, 1917-1988) 시조작가의 탄생 100년을 맞는 해이다. 최재호 시조작가는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에서 1917년 5월 6일 태어났다. 1917년은 윤동주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해이고, 파성 설창수는 한 해 앞서서 창원에서 태어났다. 최재호와 막역한 사이였던 통영 출생 김상옥은 최재호보다 3년 뒤인 1920년에 태어났다.최재호는 본격 활동을 진주에 나와서 한 것이 중심이고 또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살았던 세월은 71년간이니까 오늘날로 치면 그렇게 장수했다고는 경남문단, 그 뒤안길 | 김귀현 | 2017-03-02 15:32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11121314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