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20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9.14(금)9.13(목)9.12(수)9.11(화)9.10(월)9.7(금) 운전 또한 배려가 기본이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운전을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어린 마음에는 자유를 얻고 미래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나 보다. 운전을 한다는 것 또한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고, 지켜야 하는 규칙과 나와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는 복잡한 세상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또 운전을 하는 순간은 내 목숨이 언제나 함께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놀러 다니는 폼 잡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그래서였을까. 이런 내 생각을 열린칼럼 | 경남일보 | 2012-04-17 00:00 젊은이여 방황에서 벗어나자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남다른 무엇이 되고 싶고, 남보다 별난 무엇을 갈구하여 이룩한 성취를 과시하고 싶고, 불변의 진리를 찾아내어 남기고 싶은 시기일 것이다. 기막힌 울림소리로 세상을 감동시켜 울려 주고 싶은 꿈과 야망, 포부와 욕망, 희망 같은 탈을 쓴 정체 모를 좌절과 갈등, 절망과 슬픔은 정녕 그대들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대들의 안에서 바깥세상을 향해 요구하는 뜨거운 야망, 그 거센 열기가 찬 기류와 부딪쳐 일어나는 회오리바람, 아니 태풍 같은 분노와 절망과, 좌절이 쉴 새 없이 그대들의 마음을 부서 열린칼럼 | 경남일보 | 2012-04-16 00:00 강신웅의 중국고전 산책 현존하는 선진시대의 고서로서 진위가 뒤섞여 있음으로써 문제점이 없는 책이 없는 가운데에 1자 1구가 모두 정금미옥으로서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시경’을 첫손에 꼽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경’은 문학적 가치 이외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사료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모시’의 위서가 한 것과 같이 ‘좌전’과 ‘시기’의 기사를 억지로 끌어다 붙여 어느 시편은 어느 왕, 어느 공의 일을 가리킨다고 하는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경’은 정치에 관련되는 것이 본래 매우 드문 것이다. 그러나 역사란 결코 정치에 국 열린칼럼 | 강민중 | 2012-04-13 00:00 <하갑돈 三思一言> 조용필의 씀씀이 조용필, 그는 자신의 콘서트에선 자신의 개런티가 따로 없다.우선 무대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모두 스태프들에게 배려한다.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의 일이다. 그는 진주콘서트를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하대표, 이런 상황에서도 콘서트를 진행해도 괜찮을까?”하지만 그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선 혼신의 힘을 쏟았다.이렇듯 그의 신뢰와 배려가 조용필을 수십년간 한국가요사의 가왕(歌王)으로 존재하게 하는 이유다./문화기획가 열린칼럼 | 경남일보 | 2012-04-13 00:00 선거, 그 후 선거가 끝났다. 아침저녁으로 길가에서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열심히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며, 차량을 동원해 온 시내를 달리며 쉼 없이 스피커를 통해 자신의 공약을 내세우며 자신을 찍어 달라던 후보자들이다. 그들 중에는 지금 당선 축하인사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낙선의 고배를 마셔 차기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선거로 떠들썩했던 몇 주는 마치 여러 제후국들이 주나라 왕실에 반기를 들고 패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일으켰던 춘추 전국시대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뛰어난 왕과 장군들이 나 열린칼럼 | 경남일보 | 2012-04-13 00:00 이준의 역학이야기 <흥망성쇠> 여몽정은 파궁부(또는 파요부)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람이 비록 구름 같은 뜻이 있다고 하여도 운이 닿지를 않으면 능히 그 포부를 펼칠 수 없다. 경륜과 학식이 가득하여도 백발이 되도록 급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재능과 학문이 성기고 얕아도 소년에 등과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먼저는 부유하였으나 뒤에 가난한 사람도 있고, 먼저는 가난하였으나 뒤에 부유한 사람도 있다. 교룡이 때를 얻지 못하면 물고기와 새우들이 노는 물속에 몸을 잠기며, 군자도 시운을 잃게 되면 소인의 아래에서 몸을 굽힌다.” 그는 송나라 태종 때의 명재상으로 열린칼럼 | 경남일보 | 2012-04-13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6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