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50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11.24(금)11.23(목)11.22(수)11.21(화)11.20(월)11.17(금)11.16(목) 오늘의 저편 <13> 학동마을은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첫새벽에 남산으로 오른 진석은 아버지의 빈 무덤을 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그를 묻기 위해. 바로 그 옆에 광목에 둘둘 말린 김씨의 시신이 있었다. 등불을 든 여주댁은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관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날만 밝으면 동료를 찾으러 순사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올 것이었다. 그 동안 진석은 가슴으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수도 없이 그려댔다. 기억에 없는 그 모습을 핏줄의 본능적인 그리움으로 녹여 무작정 멋지게만 묘사했다. 빙그레 웃는 초상화를 그려놓았을 땐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1 오늘의 저편 <12> 한발 앞서 뒷산 자락에 도착한 여주댁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나환자에게 눈을 꽂으며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에게 와락 달려들어, “여보, 진석 아버지!”라고 하곤 그 위에 맥없이 풀썩 쓰러졌다. 이어 통곡도 울음도 아닌 ‘꾸르륵꾸르륵’ 소리로 목젖을 끓이며 숨진 나환자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도 모자라 뒷산에 저미어 들었다. 그 장면을 화성댁이 목격하고 말았다. 비극적인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 빤히 보이고 있어서 눈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어이없이 치켜든 눈꺼풀을 제자리로 내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1 오늘의 저편 <11> “이 악질 왜놈의 쌕끼얏!” 그는 사나운 몸짓으로 순사한테 와락 달려들었다. “이 쏀징 놈은 뭐야?”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총을 놓치고 만 순사는 독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 순사 놈의 쌕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순사의 배 위에 올라탄 그는 상대의 가슴과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으윽, 이 조센 놈의 썍끼, 네 놈의 살을 깎고 피를 말려 죽일 것이다.” 표독스럽게 뇌까리며 순사는 손끝에서 한 뼘 거리에 있는 총을 집기 위해 손톱으로 땅을 긁어댔다. “흥, 그래?”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누런 천을 벗기 시작했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0 오늘의 저편 <10> 그 소리에 맞추어 진석은 숲이 우거진 방향으로 몸을 잽싸게 꺾었다. 발을 떼어놓으려다 돌부리를 찼다. 앞으로 맥없이 넘어질 뻔했는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러다간 뿌리가 박혀 있지 않는 돌덩이를 건드렸다. ‘투루룩’ 하는 돌의 파열음이 순사의 귀에 정확하게 꽂혔다. “게 서지 못해?” 산자락을 물고 있는 오르막산길로 와락 달려온 순사는 숲으로 들어가는 진석이와 민숙이를 보고 말았다. “오빠, 나 내려줘요. 빨리.” 민숙은 진석의 등에서 내리기 위해 몸을 뻗대었다. “무슨 소리야?” 진석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이러다간 우리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0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71372373374375376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