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6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5.3(금)5.2(목)5.1(수)4.30(화)4.29(월)4.26(금)4.25(목) 연꽃처럼 펼쳐진 봉우리…불국에서 맞은 일출 연꽃처럼 펼쳐진 봉우리…불국에서 맞은 일출 오대산 비로봉 일출. 등산객들이 일출을 보며 새해 각오를 다지고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국내 5대 적멸보궁에 속한다. 군인들이 절간에 들이닥쳤다.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절을 근거지로 삼을 것을 우려해 사전에 “절을 불태우라”는 국군상부의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문수전에서 가부좌로 수행 중이던 방한암스님은 군인들의 소란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총칼을 든 그들의 기세는 드셌다 “스님, 자리를 비키시오! 절을 불태울 것입니다” 그래도 스님은 미동하지 않았다. 당황한 군인들이 다시 고함쳤다.“스니∼임! 자리를 뜨시오.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12-27 00:00 표범이 살았던 산, 여전한 것은 장쾌한 일출 뿐 표범이 살았던 산, 여전한 것은 장쾌한 일출 뿐 오도산에서 본 두무산 방향 일출(사진제공=대구시 수성구 수성메트로 김상석씨제공) 진주 ??방향에서 국도를 타고 가다 합천에 다다를 즈음 북쪽을 쳐다보면 특이한 산을 하나 볼 수가 있다. 삼각뿔 모양을 한 모습이 흡사 알프스의 마테호른과 같은 산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정상에는 통신시설이 박혀 있고 산 중턱에는 갈지자 모양의 도로가 나 있다. 주변 산을 다 물릴 정도로 산의 형태가 특이해 눈길이 저절로 간다. 군계일학 높을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사방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통신시설은 1982년 KT에서 세운 무선 중계소.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12-23 00:00 단종의 외로움 눈꽃으로 피었을까 단종의 외로움 눈꽃으로 피었을까 꿈길같은 주목군락지를 지나고 있는 등산객 젊은 사람들은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좋다하고 어른들은 추운 겨울이 싫다한다.눈이 좋다 하는 것은 순백의 청순함 외에도 눈에 얽힌 갖은 추억과 환상적인 느낌, 즉 아련한 과거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 썰매 등산 등 야외 활동으로 엮였던 추억이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고스란히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거기다 시기적으로 이벤트가 많은 성탄절과 연말, 신년이 줄지어 꿰어 있어 이런 기억이 오래토록 각인된다.어른들이 눈이나 추운 겨울이 싫다하는 것은 눈과 추위로 인한 불편함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12-13 00:00 지리산 등에 지고 선비 남명을 품은 산 지리산 등에 지고 선비 남명을 품은 산 지리산 남부능선은 세석고원에서 석문바위, 삼신능선을 거쳐 삼신봉에 이르는 구간을 말한다. 하지만 남부능선은 이 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천왕봉 동쪽 써레봉에서 내원골과 순두류계곡 사이 맥을 형성해 남쪽으로 흘러 국수봉을 거쳐 구곡산까지 닿는 20여km구간이 있다. 이렇게 50리길을 굽이쳐 달려온 능선은 마지막 구곡산에서 일어섰다가 덕산 넓은 들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를 대개 황금능선이라고 부른다. 세석산장 관리인이었던 정원강 옹이 1979년 직접 산죽밭을 베어내 등로를 개척했고, 이후 가을 해질녘 구곡산에서 이 능선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12-06 00:00 세조가 병 씻었다는 산 속엔 호랑이가 있었다 세조가 병 씻었다는 산 속엔 호랑이가 있었다 백화산 최고의 전망 암릉(앞)과 한성봉(뒤)옅은 안개가 끼어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세조는 권력을 장악할 때부터 정통성에서 이미 하늘에 빚을 졌다.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형제와 정적을 제거하는 등 피의 살육으로 권력을 쟁취했다. 요샛말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른바 ‘피의 군주’다.단종 복위운동을 하는 사육신에게는 엽기적인 거열형까지 감행한다. 허수아비로 몰았던 단종을 결국 강원도 영월에 유배하고 사약까지 내려 마지막 목숨까지 요구한다. 어린 단종은 단호했다. “차라리 내손으로 죽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에 있어서는 부친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11-22 00:00 무량사가 품은 매월당의 삶을 읽다 무량사가 품은 매월당의 삶을 읽다 김시습의 안식처 무량사. 늦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이제 갓 5세가 된 한 아이가 왕궁에 초청된다. ‘장안에 영특한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세종의 귀에까지 전해지면서 사실 확인 차 왕이 그 아이를 궁궐로 부른 것이다. 그는 3세에 시를 쓰고 5세에 소학을 읽은 뒤 한시를 짓는 천재였다. 아이는 세종이 보는 앞에서 한시를 써 내려간다.이를 지켜본 왕은 감탄하며 “훌륭하게 잘 키우라. 나라에 큰일을 할 수 있는 아이니…”라며 별호를 ‘오세(5세)’로 내렸다.왕의 칭송에 고무된 그는 1447년(세종 29)13세에 맹자 시경 서경 주역을 공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11-18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