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6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7.19(금)7.18(목)7.17(수)7.16(화)7.15(월)7.12(금)7.11(목)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구름길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구름길 구름길덜컹이지 않는 길이 어디 있으랴땅 위에도 구름 위에도수많은 흔들림 방지턱그대에게 가는 길 그대가 오는 길엔무수한 과속 방지턱 -조영래‘물체에 가해지는 외부 힘의 크기에 따라 속도는 점차 증가한다.’ 뉴튼이 정립한 운동 제2법칙(가속도의 법칙)은 꼭 물리적 대상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나의 마음이 다른 마음에게로 향하는 일도 이와 같다.저 ‘구름길’ 위나 혹은 아래, ‘그대가 가는 길 그대가 오는 길’에 덧붙는 가속도가 때로는 아찔할 때가 있어, 우리 사는 삶에도 그리 무수한 방지턱들이 존재하는가 보다. 시 디카시 | 경남일보 | 2014-07-25 00:00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깃대봉 가는길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깃대봉 가는길 이른 아침장정들이 산을 떠밀고 올라간다간밤에 해무와 노느라퉁퉁 불어터진 산을-남춘화 장정들의 어깨에 짐 지워진 생의 무게는 언제나 산만큼인 듯 내 아버지대의 생이 그러했고, 또 그 웃대 할아버지대의 생 또한 그러했을터…. 그렇게 생의 한때를 무겁게 견뎌낸 그들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 또한 내 생에 짐 지워진 이 무게를 견딜 힘이 생긴다./차민기·창신대학교 외래교수 디카시 | 경남일보 | 2014-07-18 00:00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그대 생각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그대 생각 나무가 스스로 예감에 겨워바닥에 제 잎을 써내려가는 계절,구름 봉투에 봉해지는 하늘이 있다밤이 뿌리를 내려 서녘에 가닿으면오늘 밤 네가 핀다 *윤 성 택“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1장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의 세상만물이 모두 하나(‘카오스’)였음을 전제하고 있다. 거기에서 빛과 어둠을 나누고 다시 궁창을 경계로 위아래를 구분하시니, 비로소 둘째 날에 하늘이 생기고 아침과 저녁이 나뉘었다. 셋째 날엔 물 밖으로 디카시 | 경남일보 | 2014-07-11 00:00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껍데기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껍데기 누구도내 영혼의 거처를 묻지 마라나의 영혼은밟혀도 울지 않는바깥이다정 푸 른 예로부터 동양사상에서 영(靈)과 육(肉)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육을 떠난 영이나 영을 놓친 육은 지상에 온전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이어서, 길게 곡을 하여 육을 영의 세계로 딸려 보냈다. 영과 육이 온전하게 어우러진 지상의 목숨들에는 온전하게 붙여지는 이름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어우러지지 못한 이름들은 ‘산산이 허공에 흩어진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이름 붙이기에 아까운 목숨들이 자주 우리들 일상을 소란스럽게 한다. 그들에게 붙여 디카시 | 경남일보 | 2014-07-04 00:00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한방울 3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한방울 3 한방울은 물의 씨앗한순간가장 맑게 익었다미련없이 진다-이 기 영‘찰나(刹那)’는 산스크리트어로 ‘아주 짧은 시간’이란 뜻이다. 모든 존재가 찰나에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데, 그 계속적인 생멸현상을 불가(佛家)에서는 ‘찰나생멸’이라고 한다. 존재가 생성에서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의 한 모습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리하여 현재의 1찰나를 현재라 하고, 전찰나를 과거, 후찰나를 미래라 하여 셋을 합하여 ‘삼세(三世)’라 이른다(『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 2009, 박문사).저 단순해 뵈는 물방울에도 삼세의 디카시 | 경남일보 | 2014-06-27 00:00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왈(曰) [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왈(曰)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종심(從心)이라 했던가묶어 걸고 매단, 꼬인 채 늘어진 실타래 한 올까지바람벽에 말씀으로 남으셨다‘살다보면 다 요긴하지’ -박윤우 *종심(從心):‘논어’에 나오는 말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從心所慾不踰矩)’를 줄인 말.공자께서 이르시길 ‘일흔이 되면 수양이 어느 정도 되어 있어 생각한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수양(修養)’은 지식인들의 몸가짐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크게 배운 바 없어도 스스로 몸소 행하는 바가 반듯하면, 그 수 디카시 | 경남일보 | 2014-06-20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21222324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