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50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3.10(금)3.9(목)3.8(수)3.7(화)3.6(월)3.3(금)3.2(목) 오늘의 저편 <16> 지금 한동네에서 살아온 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딸년을 위해 여주댁과 진석이가 빨리 주재소로 끌려가길 바라고 있었다. 순사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문을 외기도 했다. “그러지 말고 뒷간에 다녀오세요.” 창호지 문에다 내놓은 손가락구멍으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민숙은 방문을 살그머니 열며 얼굴을 쏙 내밀었다. 그녀는 날이 밝아올까 봐 가슴이 졸아붙고 있었다. 죽은 순사를 찾아 금방이라도 눈에 불을 켠 인간들이 나타나 오빠의 집을 들쑤셔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오빠가 학도병으로 끌려가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4 오늘의 저편 <15> 그녀는 그곳에서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사람들의 발길을 끓어놓기 위하여. “당신은 어머니 될 자격이 없어.” 진석은 판결을 내리듯 그렇게 말했다. 자식 생각을 빈대눈물만큼이라도 했다면 보낼 수 없었더라도 보냈을 것이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서운한 마음이 설움으로 왈칵 북받쳐 올랐지만 여주댁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아들 손에서 기어이 삽은 빼앗았다. “변명이라도 해 보세요. 절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야 했고 뒷방에서 지내게 할 수도 있었는데 굴속으로 보냈다고……. 헛, 헛!” 진석은 분노로 전이된 절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3 오늘의 저편 <14> ‘니들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니? 네 아버지가 도둑질을 했니? 강도짓을 했니? 살인을 했니? 순사 놈 앞잡이노릇을 했니? 재수가 더럽게 없어서 몹쓸 병에 걸린 것뿐이다.’ 여주댁은 입속으로 아들을 실컷 원망하며 부르짖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혐오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못내 서운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루아침에 문둥병자의 자식이 되어버렸으니 네가 지금 제정신이겠니?’ 또한 아들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여주댁은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었다. “흥, 천륜! 난 …… 없습니다. 없다고요.” 진석은 아버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2 오늘의 저편 <13> 학동마을은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첫새벽에 남산으로 오른 진석은 아버지의 빈 무덤을 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그를 묻기 위해. 바로 그 옆에 광목에 둘둘 말린 김씨의 시신이 있었다. 등불을 든 여주댁은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관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날만 밝으면 동료를 찾으러 순사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올 것이었다. 그 동안 진석은 가슴으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수도 없이 그려댔다. 기억에 없는 그 모습을 핏줄의 본능적인 그리움으로 녹여 무작정 멋지게만 묘사했다. 빙그레 웃는 초상화를 그려놓았을 땐 연재소설 | 이해선 | 2012-03-29 15:21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71372373374375376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