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156건)
[경일시단] 빈칸 (강희근)
음악회에 갔다가 나오는 중에몇십년 전 제자 둘을 만났다한 사람은 얼굴이 익은 데가 있고 한 사람은얼굴부터 빈칸이다얼굴만 아직 기억에 있는 제자도얼굴 뒤에 있는 추억은 캄캄한 빈칸이다시간이 흐른 뒤 그 얼굴을 만나면 그 얼굴마저 빈칸이되리라내가 지금 캠
경남일보   2013-09-30
[경일시단] 성묘 길 (주강홍 시인)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주 섰습니다 경계의 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우린 한 잔 술을 나누고 침묵의 언어를 다스립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뉘면서 그러나 꼭 해야 할 말들은 차마 숨겨 숨겨둡니다 그것은 다음에 또
경남일보   2013-09-16
[경일시단] 멸치의 열반 (장용철 시인)
눈이 꼭 클 필요가 있겠는가?검은 점 한개 콕 찍어 놓은 멸치의 눈.눈은 비록 작아도살아서는 그 큰 바다를 다 보았고이제 플랑크톤 넘실대는 국그릇에 이르러눈 어둔 우리를 위하여안구마저 기증하는 짭짤한 생검은빛 다 빠진 하얀 눈멸치의 눈은지금 죽음마저
경남일보   2013-09-02
[경일시단] 뒷굽 (허형만 시인)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경남일보   2013-08-19
[경일시단] 새우 (서하 시인)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잠수해버리겠다고입버릇처럼 말하던 그가 정말 사라졌다세상을 안으로만 껴안은 탓인지구부정하게 허리 펴지 못한 저녁놀몸이 한쪽으로 굽었다바다가 내다보이는 마을 앞길도굽을 데가 아닌 곳에서 슬며시 굽었다생의 마디마디 펴지지 않는 토막
경남일보   2013-08-05
[경일시단] 여승 (백석 시인)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낮이 옛날처럼 늙었다.나는 불경처럼 서러웠다.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전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경남일보   2013-07-22
[경일시단] 라면을 먹으며 (박은규 시인)
돌아 앉아 라면을 먹습니다밖에 비 쏟아지고 천둥 우를 우르를 치는 밤문득 허기가 졌나 봅니다문득 식욕이 돋았나 봅니다세상일과는 무관하게여백처럼 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등 뒤에 폭우는 더 거세게 나오고그것보다 더 큰소리를 내며 후루룩 후룩 라면을 먹습
경남일보   2013-07-08
[경일시단] 우현(雨絃)환상곡 (공광규 시인)
빗줄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현(絃)이어서나뭇잎은 수만 개 건반이어서바람은 손이 안 보이는 연주가여서 간판을 단 건물도 고양이도 웅크려 귀를 세웠는데가끔 천공을 헤매며 흙 입술로 부는 휘파람 소리화초들은 몸이 젖어서 아무데나 쓰러지고수목들은 물웅덩
경남일보   2013-06-24
[경일시단] 터미널 (이홍섭 시인)
젊은 아버지는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경남일보   2013-06-10
[경일시단] 내 그림자 (이상원 시인)
내 그림자 밟지 마라긴 날을 함께 걸었어나 한 번도내 가진 색깔을 가지지 못했다.검정 단벌 깊숙이 모가지를 묻은 체눈도 귀도 접고 풀 포기에 던져져도 각인되는 법도 없이 묵묵히 내 가는 걸음을 따랐을 뿐이다.지나가면 그뿐, 누구의 꿈도 아닌허접한 길을
경남일보   2013-05-27
[경일시단] [경일시단]세상의 모든 길 -혜초의 길-
걸어간 사람들이 길을 만드는 법길은 가고자 하는 마음이 만드는 법세상의 모든 길은 내 앞의 사람들이 만들었다혜초에 앞서 현장이 걸었고현장에 앞서 부처가 걸었던 길어디든 길 나서서 보라내 앞에 걸어간 사람들의 수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테니▲작품설명
경남일보   2013-05-13
[경일시단] 30cm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리,마음을 숨길 수 없는 거리,눈빛이 흔들리면 반드시 들키는 거리,기어이 마음이 동하는 거리,눈시울을 만나는 최초의 거리,심장 소리가 전해지는 최후의 거리,눈망울마저 사라지고 눈빛만 남는 거리,눈에서 가장 빛나는 별까지의 거리,
경남일보   2013-04-29
[경일시단]
칼을 들고 목각을 해보고야 알았다나무가 몸 안에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촘촘히 햇빛을 모아 짜 넣던 시간들이 한 몸을 이루며 이쪽과 저쪽 밀고 당기고 뒤틀어가며 엇갈려서오랜 나날 비틀려야만 비로소 곱고단단한 무늬가 만들어진다는 것 제 살을 온
경남일보   2013-04-15
[경일시단] 담쟁이
담쟁이 손이 둥근 것은 꿈이 한 동 크기 때문이다순한 별들을 데리고 세들 집을 찾다돌아서던 곱사등이 여인이바람이 불때마다제 잎들끼리 어루며세상의 벽을 껴안듯유리문 너머 허공을 안는 걸 보았다그녀의 굽은 등 보름달로 내려앉아 내일은,별들이 잠들 방 찰랑
경남일보   2013-04-01
[경일시단] 목련과 그믐달
누가 슬어놓았나저 많은 사생아들수십 개의 입술이 움찔거리네저 많은 입들 누가 다 먹여 살리나잇바디 시큰이큰 젖 빠는 소리에내 젖이 핑그르르-도네매일 밤 누가 와서 수유하다 가는 걸까허연 젖내 물큰물큰한 가지마다뽀얗게 젖살 오른 몽우리들입가에 허연 젖
경남일보   2013-03-18
[경일시단] [경일시단]목련
쪼끄만 새알들을 누가추위 속에 품어 주었는지껍질을 쪼아 주었는지언제 저렇게 가득 깨어나게 했는지 가지마다 뽀얗게 새들이 재잘댄다허공을 쪼아도 보고바람 불때마다촉촉한 깃을 털고꽁지깃을 치켜 세우고우왕좌왕 서투르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벌써 바람의 방향을 알
경남일보   2013-03-04
[경일시단] 고백성사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여간 어렵지 않습니다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여간 흉하지 않습니다오늘도 성당에서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아내는 못본 체 하였습니다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정말 어
경남일보   2013-02-18
[경일시단] [경일시단]칼과 사과
1둥근 유혹으로 부푼 이브의 몸에 차갑게 세운 내 금속성의 본성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개입하는 그 순간,2너와 나의 관계항은 단순 명쾌하다꽉 물고 있던 긴장이 쩌억 갈라진다오, 나의 불가항력은 깨끗하고 적나라하다※작품설명=여자의 자물통은 채워져 있지만
경남일보   2013-01-28
[경일시단] 소금
소금이바다의 상처라는 걸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소금이바다의 아픔이라는 걸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흰 눈처럼소금이 떨어져내릴 때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아는 사람은많지 않다그 눈물이 있어이 세상 모든 것이맛을 낸 다는 것을 작품설명=
경남일보   2013-01-14
[경일시단]
눈사람 한사람이 찾아왔었다 눈은 그치고 보름달은 환히 떠올랐는데 눈사람 한사람이 대문을 두드리며 자꾸 나를 불렀다 나는 마당에 불을 켜고 맨발로 달려나가 대문을 열었다 부끄러운듯 양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눈사람 한사람이 편지 한장을 내밀고 어디론가 사
경남일보   2012-12-31
 1 | 2 | 3 | 4 | 5 | 6 | 7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