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1,199건)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8>
밤늦은 시각에 경성에 도착한 형식은 주위를 살피며 가게로 다가간 후 소리를 죽이며 문을 열었다. “사, 살려주세요.” 인기척을 느낀 종업원 철주는 문을 향하여 모깃소리만한 목소릴 냈다. “철주야!” 형식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목을 돌렸다. 불을 함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7>
그랬다. 신랑이 족두리를 벗겨주기는 했다. 그리곤 술상 앞에 앉아 술을 마셔대다간 혼자 원앙금침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옷고름을 풀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정자는 기어이 소리 없이 훌쩍였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외로움을 꿀꺽꿀꺽 삼키다가 새우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6>
“안 돼. 가지 마. 지금 가면 너도 위험해.” 민숙은 그의 옷자락을 딱 붙잡았다. “철주야! 영식아!”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형식은 점원들의 이름만 불러댔다. ‘제발, 살아 있어. 죽으면 안 돼.’ 숫제 주문을 외며 달렸다. “가면 너도 맞아죽어.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5>
사실 민숙이도 순사 앞잡이 놈한테는 원한이 많았다. 그 동안 진석 오빠는 학동에 올 때마다 쥐도 새도 모르는 시각에 숫제 숨어들 듯 했다. 그런데도 꼬리표처럼 순사가 도끼눈을 희번덕거리며 나타나곤 했던 건 다 저런 놈이 밀고했기 때문일 터이니까. “뭐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4>
“형식아, 어떡하면 좋으니?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봐.” 더위를 식히고 있던 노인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포착한 민숙이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길 쪽으로 가 보자.” 형식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둘은 산언덕을 급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3>
“상극이야 상극.” 대뜸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민숙을 위해 살풀이굿을 꼭 해야 한다고 다시 덧붙여 말했다. “둘이 연분은 있나요?” 무녀와 더는 얼굴을 마주대하고 싶지 않았던 화성댁은 급기야 궁금증을 훅 털고 말았다. “상극이라니까. 물과 불이야.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2>
도리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화성댁은 형식의 목소리를 듣고는 귀를 바짝 세웠다. ‘아이고머니, 저 사람이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자기 집 담장 안을 엿보다간 눈을 번쩍 떴다.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 그 표정이 참 묘했다. ‘아니, 장가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1>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아낙은 확신을 심어주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팽개쳐져 있는 솥뚜껑을 집어 들었다. 넋 없이 히죽거리며 핏덩이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던 노파의 어제가 생각하는지 공연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먼동이 밝히고 있는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50>
“변명 따윈 집어치워요. 남의 잔치를 망치려고 작정을 하지 않은 다음이야 어찌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이오.” 놀란 가슴이 얼른 진정이 되지 않는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후사정을 따지고 보면 화성댁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었다. 사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9>
콧숨을 훅훅 들이키며 여기저기로 눈을 돌리던 형식의 할머니는 부침개를 부치는 아낙들에게로 발걸음을 당겨갔다. “간이 잘 맡는지 한번 드셔보세요.” 부추부침개 첫판을 소쿠리에 막 들어내 놓던 아낙이 할머니를 보며 겸손한 표정으로 웃음을 빼물었다. “음,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8>
“오셨네요. 민숙인 어떡하고 있어요?” 학동에서 나팔댁으로 통하는 아낙이 부침개거리를 다듬다 말고 화성댁에게 다가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평소에 오지랖이 넓다 못해 남 떡 먹는데 콩고물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남 말할 건더
경남일보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7>
‘저건 떡살이잖아?’ 부엌문 옆의 오지독에 꿈에도 구경하기 힘든 허연 떡쌀이 불리어져 있은 것을 보면서 화성댁은 또 속이 뒤집어졌다. “어서 오우.” 화성댁을 발견한 형식 할머니가 사립문밖으로 나오며 반색했다. “예. 이제 손자며느리를 보았으니 얼마나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6>
너나없이 굶기를 밥 먹듯 해 오고 있었다. 쌀가게 사장한테 시집보내면 호강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제발 절 좀 내버려 두세요.”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 민숙이도 목청껏 대꾸했다. 소리로 발성되지는 않았다. 그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5> 4.아름다운 절망
사랑은 슬픈 것일까? 서로에게 마음이 딱 붙어버리면 영영 떨어지지도 않기에 모질도록 질긴 것일까. 사랑타령에 목을 맨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네의 애틋한 사랑가는 어쩌자고 끝일 줄 모르는지…. 1945년 8월 15일, 아침부터 습도가 좀 높았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4>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엉터리야.” 낮잠을 자다 말고 부스스한 머리칼로 달려 나온 동숙은 팔짱을 끼곤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민숙아,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야 해.’ 대문 밖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진석의 두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3>
화성댁은 가증스럽다는 눈으로 여주댁을 쏘아보았다. 애를 낳아본 사람이 한 달 가까이 민숙이 년을 끼고 있었으면서 그 년 뱃속에 아이는커녕 애 그림자도 없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겠는가. 과부사정 과부가 잘 아는 법이고 자기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2>
머리통에 온통 진석이 놈 생각으로 가득한 딸년이 아닌가. 여주댁 손을 붙잡고 어머님 어쩌고 해 가며 경성에 있게 해 달라고 눈물을 찔찔 짜대면 입으론 가라고 하면서도 못이기는 체하고 계속 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화성댁은 멱살잡이를 해서라도 민숙을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1>
“민숙이가 경성에 갔습니까?” 진석이도 굳이 말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네. 입덧하는 년을 끼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동네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자네 누이 집에 보내지 않았겠나?” 화성댁은 주위를 살펴가며 조용조용 말했다. “입덧? 하!” 얼굴이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40>
“여, 여보게!” 단걸음에 사립문밖으로 달려 나온 화성댁은 급한 김에 목청부터 뽑았다. “아. 예.” 광목 찢는 소리가 등에 척 달라붙는 순간 진석은 등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이상하다.’ 그대로 우뚝 서며 진석은 동공에 힘을 주었다. ‘여보게’
이해선   2012-03-29
[연재소설] 오늘의 저편 <39>
여름이 무르익고 있는데 벌써부터 가을 맞은편에 있는 새봄을 기다리면 계절이 욕할까? 그래도 화성댁은 봄이 무척 그리웠다. 일본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는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었다. ‘이년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침이라고 한술 뜨기 위해
이해선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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